“정말 반갑습니다. 만나서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25일 오전10시30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5층 이사회 회의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기다리고 있던 40여명의 중소기업인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들어섰다. 박 장관과 함께 간담회장으로 들어선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이낙연 국무총리가 박 장관을 ‘중소기업 응원단장’이라고 했다”며 박 장관을 소개하자 현장에서는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하지만 간담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심각하게 변했다.
박 장관이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중소기업계와의 간담회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성토의 장이자 애로가 폭주한 민원 현장이었다. 간담회는 오전10시30분부터 오후1시까지 150분간 이어졌다. 간담회에 앞서 김 회장이 “끝장토론을 하자”고 제안하자 박 장관이 “알겠다”며 3시간에 가까운 간담회가 성사됐다. 현장 건의와 사전 건의만도 총 53건이었다. 전임 홍종학 장관의 첫 간담회 때 나온 건의(19개)의 3배에 달했다.
김문식 주유소운영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최저임금에서 우려되는 점은 지불 주체에 대한 고려 없이 임금을 단일화해 적용하는 것”이라며 최저임금을 업종이나 규모별로 차등화할 것을 요구했다. 박 장관은 “최저임금을 중소기업에 차등 적용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며 “국가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게 되면 지금보다 더 큰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지역별 차등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생활물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은 임금이 좀 더 높고 상대적으로 물가가 낮은 강원도는 조금 덜 받는 식”이라며 “중앙정부는 최저임금 하한선만 제시하고 지역별로 자율권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최저임금에 관한 토론은 최저임금 결정 과정으로 번졌다. 김 이사장은 “최저임금이 정치적 논리로 결정된다”며 “진보정권·보수정권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얼마 전 경제장관회의가 있었는데 그때도 공익위원 문제가 심도 있게 거론됐다”며 “(공익위원은) 중립적인 인사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최저임금이) 정치적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지난달 류장수 위원장을 비롯해 공익위원 8명이 사표를 제출하며 공익위원을 새로 구성해야 하는 상황에서 중소기업 정책을 총괄하는 중기부 수장이 공익위원의 정치적 중립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셈이다.
최근 한진그룹의 경영권 승계 이후 재계의 관심을 받는 기업승계 활성화를 위한 세제개편에 대해 박 장관은 “정부가 기업승계에 대한 전반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이 360만명인데 업력이 40년 넘은 곳은 1%밖에 안 된다”며 “업력이 오래된 중소기업이 늘어나야 강한 중소기업이 생길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공장을 팔아 현금화해 세금을 내면 상속세가 50%인데 (지분을) 승계하면 상속세가 65%다. 이런 규정은 불합리하다. 공장은 기업가 한 분의 인생이면서 사회의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내년 1월부터 300인 미만 중소사업장까지 적용되는 근로시간 단축도 도마 위에 올랐다. 중소기업계는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는 상황에서 근로시간까지 줄면 신규 고용이 어렵다고 한목소리로 호소했다. 박순황 금형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근로시간은 산업의 경쟁력과 직결되고 근로자들도 근로시간 단축으로 일당이 줄어들어 걱정이 많다”며 “노사 합의를 전제로 3개월까지 적용되는 탄력근로제 적용기간을 1년으로 연장하고 도입요건도 완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 장관은 “업계의 고충을 충분히 알고 있고 탄력근로제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는 만큼 오는 6월에 결과가 나오면 (입장을) 밝히겠다”고 화답했다.
박 장관은 중소기업 근로자의 복지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중소기업 근로자 온라인복지센터 구축과 관련한 건의에 대해 “복지힐링센터가 필요한 만큼 내년도 예산에 반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모범적으로 하나를 해서 성과를 보며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도한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노란우산공제 지역회관 확보 지원 요청에 대해서는 “노란우산공제 규모가 10조원을 넘었다. 공제회를 만들어준 것이 혜택인데 거기에 사무실까지 만들어달라고 하면 과하다. 쉽게 설명하면 은행 허가를 내줬더니 점포까지 만들어달라는 것과 같은 얘기다. 원칙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중소기업계는 이 밖에도 △협동조합의 합법적 공동사업에 대한 담합 적용 배제 △조합 추천 수의계약 한도 상향 등 제도 개선 △두부 제조업의 소상공인 적합업종 지정 등을 건의했다.
중기부는 이날 간담회에서 나온 건의집과 현장 건의 등을 통해 중기부 차원에서 해결 가능한 부분은 부처 내에서 처리하고 유관부처·국회 등과의 협의가 필요한 사항은 별도로 추진하기로 했다. 박 장관은 “앞으로도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정부 내 전달자, 대변인이 되겠다는 의지를 전하고 중소기업들도 혁신과 투자 등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돼달라”고 당부했다.
/양종곤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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