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선거 때마다 정치권이 앞다퉈 금융공기업 본점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면서 금융권에서는 금융을 도구화하려는 정치권의 시도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수 인재 확보와 근접성 등이 필요한데 지방으로 이전하면 인재 유치는커녕 기존 인력의 이탈도 막을 수 없게 돼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셈법에 따라 금융공기업 유치가 더 치열해지면서 정부 결정까지 뒤집으려는 시도가 횡행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중심지추진위원회는 지난달 전북을 제3금융중심지로 지정하는 방안에 대해 보류하기로 했다. 기존의 금융허브인 서울과 부산의 경쟁력을 보다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금융중심지 지정을 통해 전북에 금융공기업을 유치하려던 민주평화당은 금융위의 결정에 대해 즉각 반발했다. 정동영 평화당 대표는 “전북의 제3금융중심지 지정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라며 투쟁을 통해 재지정을 이끌어내겠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정치권의 입김에 따라 금융중심지가 서울과 부산으로 흩어지고 각종 금융공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한국의 금융경쟁력은 급락했다. 영국 컨설팅그룹 지옌에 따르면 서울의 국제금융센터지수(GFCI)는 올 3월 기준 세계 112개 도시 중 36위로 뒷걸음질했다. 불과 4년 전인 지난 2015년만 해도 6위로 상위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했지만 주택금융공사·예탁결제원·캠코 등 금융공기업이 부산으로, 국민연금공단이 전주로 이전한 뒤로는 서울의 금융경쟁력이 2017년 27위, 2018년 33위 등으로 점차 떨어지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국내 자본시장 규모를 고려하면 서울에 금융 인프라가 몰려 있는 것이 경쟁력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서 “주요 금융공기업이 지방으로 잇따라 내려가다 보니 돈을 잘 굴릴 수 있는 우수인재 선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금융공기업을 표심의 도구로 삼으려 하고 있는데도 해당 금융공기업은 쉬쉬하는 분위기다. 국정감사 등의 무기를 쥐고 있는 정치권에 반발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반대의사를 공개적으로 내비칠 경우 ‘괘씸죄’에 걸려 지방 이전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책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방 이전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할 수 있어 조심하고 있다”면서 “공공기관의 예산을 주무르는 국회를 상대로 반발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푸념했다. 더구나 국민연금 기금본부에서는 전주로 이전이 결정된 2016년부터 매년 20명 이상의 운용역이 퇴사하는 등 인력 유출이 증명됐지만 금융공기업 이전을 총선을 위한 치적 쌓기로만 치부하다 보니 경쟁력은 뒷전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이 이슈가 논란이 되면 될수록 지역구 의원들은 더 반긴다”며 “자신들이 지역을 위해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 득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금융공기업 노조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지방으로 이전시키는 법안을 발의하자 금융노조는 반대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여당 정책에 호응해온 금융노조가 반발한 것은 이례적이다. 국책은행 노조의 한 관계자는 “일부 국회의원들이 지방균형발전을 재선을 위한 ‘장사논리’로 악용하고 있다”면서 “임직원 중 지방 이전을 찬성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조용히 일하게 놔두는 게 경쟁력을 그나마 유지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김기혁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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