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가채무비율 논란과 관련해 확장재정이 필요한 만큼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40% 사수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와 여당의 거센 재정확대 요구를 ‘곳간지기’인 홍 경제부총리도 방어해내지 못한 것이다.
홍 부총리는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지난 16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대통령께)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를 넘어서고 재정수지 적자도 커진다는 점을 보고했다”면서 “경제 사정과 세수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확장적 재정기조를 가져가면서도 재정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채무가 늘어나는 것과 재정적자 수지가 커지는 것 같아 정보를 제공하고 균형감 있는 논의가 있기를 바랐기에 보고를 드린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홍 부총리에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를 예로 들며 “국가채무비율 40%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지적해 미묘한 시각차를 보였다는 본지 보도 이후 적정 국가채무비율 수준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홍 부총리는 문 대통령이 △단기적으로 국가채무비율이 다소 상승하더라도 지금 단계에서는 확장재정 여력이 있으니 재정 역할을 선제적으로 더 강화해야 한다는 점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구조조정과 재정혁신이 있어야 한다는 점 △경제 활력 제고를 통해 중장기로 성장잠재력을 높여 세수가 늘면 단기적인 재정지출을 상쇄해 재정건전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 등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기재부가 지난해 발표한 2018∼2022년 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가채무비율은 오는 2020년 40.2%를 기록해 40%를 넘어서게 된다. 홍 부총리는 “초과 세수가 없어지면 내년 40%를 넘어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내년 예산안 편성에 돌입하며 경제 활력 제고를 뒷받침하고 구조개혁을 지원하며 미래 사회에 선제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확장재정을 견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이 유지되도록 지출 구조조정과 재정혁신을 실현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내년 최저임금 결정과 관련해 “경제와 고용에 미치는 영향, 경제주체의 부담 능력, 시장에서의 수용성 등 세 가지를 논의 과정에서 함께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8~2019년 2년간 최저임금을 29.1% 인상한 부작용이 쏟아져나오는 점을 고려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OECD는 “지난 2년간의 최저임금 인상이 취업을 어렵게 했고, 특히 미숙련 노동자에게 더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은 노동생산성 증가율(3~4%) 아래로 조절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기업이 애로를 호소하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입법 역시 국회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는 투자 확대를 위해 다음달부터 5~6개 업종의 대기업을 만날 계획이다. 그는 “재벌 총수를 개인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아니고, 업종별 대기업 관계자 여럿을 같이 만나 애로를 경청하고 정부도 요청을 하겠다”면서 “첫 번째로 석유화학업종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홍 부총리는 “5월은 추가경정예산을 하느라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며 “6월 초부터 단계적으로 하려고 했는데 추경과 겹치면 추경 심의가 우선이니 그것을 하고 일정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분리 추경에 대해 “미세먼지 추경과 경기 하방 리스크에 대비하는 선제적 민생 추경이 이번에 반드시 함께 심의돼야 한다”며 “다음달 초순이라도 추경 심의가 진행돼 확정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호소했다. 7~8월로 넘어가면 내년 예산 편성 작업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늦어도 6월 초순에 추경이 마무리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한편 홍 부총리는 “리디노미네이션과 관련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여러 추측과 논란이 일고 있는데, 장단점을 떠나 문제점에 대한 우려와 사회적 충격이 크기 때문에 지금 논의할 단계가 아니고 추진할 계획도 없다”고 강조했다.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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