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에서 의류업을 하는 김영희(가명)씨는 지난달 서울신용보증재단에 보증을 신청하러 갔다가 “남편분이 연대보증을 서줘야 신용보증을 해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김씨는 사실상 ‘명의’만 빌려주고 실제 운영은 남편이 하는 게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김씨의 남편은 원래 섬유소재와 의류를 동시에 제작하는 일을 했지만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의류업을 포기했다. 대신 그의 배우자인 김씨가 개인사업자로 창업하며 사업을 이어받았다. 서울신용보증재단 관계자는 김씨에게 “남편이 없으면 혼자서 사업을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한 만큼 두 사람 모두 사업에 관여된다고 볼 수 있으니 공동사업자로 등록하고 남편분이 연대보증을 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27일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실과 중소기업계에 따르면 신용보증재단중앙회는 김씨의 사례처럼 여전히 연대보증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에서 재창업자의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겨졌던 연대보증 폐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공공기관에서 연대보증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김삼화 의원실이 신보재단중앙회로부터 받은 ‘연대보증 운용기준’에 따르면 각 지역 신보재단은 실제 경영자가 따로 존재하는 경우 대표자와 실제 경영자가 연대보증을 서게끔 규정하고 있다. 대표자가 이름만 걸어놓고 경영을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차단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이를 ‘연대보증’을 통해 규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보재단중앙회 관계자는 “우리도 다른 방식으로 도덕적 해이를 예방할 수 있다면 연대보증을 쓰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다른 정책적 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연대보증 폐지로 정책기금 부실률이 높아지자 오히려 재창업자금을 받기 어려워졌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서울 양천구에서 제조업을 하는 유영화(가명)씨는 지난해 8월 재창업 이후 4개월 만에 매출 8,900만원을 벌어들였지만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재창업자금을 받는 데 실패했다. 유씨는 “중진공 직원이 ‘연대보증 폐지로 인해 신용등급 우선순위에 따라 지원하게끔 돼 있어 우리 같이 부도난 경험이 있는 회사에는 지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익명을 요구한 모 교수는 “향후 연대보증 폐지로 정책자금 부실률이 더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며 “연대보증 폐지가 보수적인 자금 운용으로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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