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하던 외국인의 매도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최근 나흘간 1조5,000억원 넘게 매물 폭탄을 투하하며 코스피지수를 2,020선으로 급격하게 끌어내렸다. 원화 약세로 손실 규모가 커진 외국인이 당분간 추가 매수보다는 관망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무기력한 증시가 더욱 표류할 가능성이 짙어지는 상황이다.
29일 코스피지수는 2,020선을 힘겹게 지켜내며 25.51포인트(1.25%) 하락한 2,023.32포인트로 마감했다. 전날 올 들어 가장 많은 7,188억원을 순매도한 외국인은 이날도 3,610억원을 장 시작부터 쏟아내며 낙폭을 키웠다. 기관(1,708억원)과 개인(1,938억원)이 순매수하며 지수 방어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코스닥지수의 낙폭은 1.61%로 더욱 컸다. 외국인은 코스닥시장에서도 1,303억원을 순매도했다. 지난 16일(1,616억원)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많은 규모다.
외국인은 올 들어 매달 유가증권시장에서 순매수 행보를 이어왔으나 이달 들어 급격히 팔자 분위기로 돌아섰다. 특히 이달 9~10일(현지시간)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되면서 외국인의 순매도 공세는 격해지고 있다. 이달 2일부터 8일까지만 해도 4거래일 연속 순매수했지만 9일부터 현재까지 단 3거래일(21~23일)을 제외하면 모두 팔자 우위다. 이달 외국인의 순매도 규모는 2조7,000억원을 넘었는데 24일부터 4거래일 동안만 1조5,800억원가량을 팔아치웠다.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 조짐에 불안 매물이 늘어났고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환차손 우려가 매도 규모를 더 키웠다고 분석했다. 하인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28일 기준 코스피지수는 2,049포인트지만 외국인 입장에서 환율을 고려한 달러 환산 코스피는 1,930포인트”라고 지적했다.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는 코스피지수만으로 대략적인 수익·손실 추정이 가능하지만 외국인 입장에서는 환율까지 고려해야 정확한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 연구원은 이를 토대로 연초 이후 유입된 외국인 자금의 추정 수익률을 -9% 내외라고 평가했다.
외국인의 자금 이탈이 국내에만 국한된다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 리밸런싱에 따른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중국 A주 편입이 확대되고 그만큼 국내 비중이 줄어들어 외국인 자금이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외국인의 자금은 국내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신흥국 전반으로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최근 외국인의 순매도 규모만큼을 기관이 순매수하고 있지만 지수 하락을 막기에는 힘이 부족한 양상이다. 결국 외국인 매수세가 다시 유입돼야 국내 증시가 안정될 수 있는데 시점은 3·4분기는 돼야 할것으로 전망된다. 하 연구원은 “미중 무역갈등이 완화될 수 있으며 중국·유럽 경기가 회복할 수 있는 시점”이라며 “게다가 국내 상장사들의 주당순이익(EPS) 하향 조정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시점이기도 하다”며 3·4분기 중후반을 외국인 매수세 유턴 시기로 봤다.
/김광수기자 b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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