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현재 만 60세인 정년을 연장하는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할 시점”이라고 군불을 지피면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23일 기자들과 만나 “노후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고령층의 빈곤 문제가 심각하고 급격한 인구구조 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정년 연장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운을 뗀 바 있다. 오는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정도로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노인빈곤율(45%)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문제 인식이 주된 배경이다. 이와 관련해 기재부 주도로 가동 중인 인구구조개선 대응 태스크포스(TF)는 정년 연장 문제를 집중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만 60세 정년이 시행된 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은데다 청년 일자리 문제와 상충돼 세대 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어 현장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인식이 강하다.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와 경직적 고용시장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먼저 풀지 않으면 법적 정년을 늘려도 현실적인 고용 연장은 힘들 수밖에 없다. 이에 서울경제신문은 3일 정년 연장과 관련한 주요 쟁점들을 짚어봤다.
①60세로 정년 연장된 지 이제 3년…각종 지원책은 유명무실=법적 정년은 2013년 국회가 고령자고용촉진법을 개정하면서 2016년부터 60세로 연장됐다. 정부는 정년 연장에 따른 청년 고용절벽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세대 간 상생고용 지원금 제도를 시행했으나 일자리 문제는 여전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난 정부가 추진했던 각종 지원제도들은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일단 정년이 연장되면 현재 시행 중인 임금피크제는 대대적 개편이 불가피하다. 현재 55~59세에 적용되는 임금피크제의 도입 시점을 늘어나는 정년과 연동시켜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청년을 신규채용하면 1인당 연 1,080만원(대기업은 540만원)을 지급하는 세대 간 상생고용 지원금은 지난해로 종료됐다. 그나마 공공기관은 정부 지원에 따라 별도 정원을 마련해 청년을 신규 채용하고 있으나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고령자의 인건비 절감분으로 충당하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연동 신규청년 채용은 2016년 4,282명에서 2017년 3,529명, 2018년 1,386명으로 줄었다.
정부는 정년 연장에 앞서 고령자를 고용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고령자고용법을 개정해 사업주에게 ‘연금수급연령 또는 65세까지 근로자의 고용 연장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부과하는 방안, 사업주가 정년 이후에도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면 지원해주는 제도를 신설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 이달 말 내놓을 계획이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피크제나 상생고용 지원금의 선례처럼 정부 지원의 원칙이 또 바뀌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②세대 간 일자리 갈등 증폭 우려=통계청에 따르면 4월 청년실업률은 11.5%로 2000년 이후 역대 최고다. 60세 정년 연장 도입 시점부터 염려됐던 세대 간 갈등은 여전하며 정년 연장이 기업의 전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 입장에서는 임금 조정 없이 정년을 연장해놓으면 당연히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노동비용을 상쇄하기 위해 고용을 줄인다”면서 “불과 몇 년 만에 다시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문제”라고 설명했다.
홍 부총리는 “향후 10년여 동안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가는 베이비붐 세대가 연간 80만명에 이르고 새로 진입하는 청년층은 40만명에 그치는 점을 고려하면 (청년 일자리 감소) 효과는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단순히 유입과 유출 숫자만을 놓고 청년 일자리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은 안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우선 젊은 층이 선호하는 대기업, 공공기관 등 양질의 일자리는 현 수준에서 크게 늘어나기 힘들어 ‘제로섬 게임’이 바뀌기는 쉽지 않다.
③임금체계 등 노동시장 구조개편 병행돼야=정년 연장은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구조와 경직된 노동시장에 대한 개편과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지난 60세 정년 연장 때는 이에 대한 고민 없이 국회에서 처리돼 기업들의 혼란과 피해가 컸다. 여전히 기업 두 곳 중 한 곳이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고 공공기관에서조차 직무급 논의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연공주의를 직무 특성과 역량으로 평가받도록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법적 정년은 지금도 현실과는 괴리가 크다. 현 직장에서의 퇴직연령은 48세로 60세에 한참 못 미치고 아예 노동시장에서 물러나는 은퇴 연령은 71.4세(2013년)에 달한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대부분이 정년보다 훨씬 빨리 기존 직장에서 물러난 뒤 70세 넘어서까지 일자리를 찾는다는 뜻이다. 단순히 법적 정년만 늘릴 것이 아니라 나이, 정규직 여부 등과 관계없이 능력만 있으면 일할 수 있는 유연한 노동시장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이유다.
최영기 전 노동연구원장은 “임금, 근로시간 뿐 아니라 직무체계 재설계 등 노동시장 전반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며 “지금 화두를 던질 수는 있어도 5년~10년까지 걸릴 정도로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황정원·빈난새기자 garde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