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경기 용인시에 있는 진단기기업체 ‘노을’의 연구소에 들어서자 ‘마이랩(Micro intelligent Lab)’이라고 불리는 작은 기계가 사무실 곳곳에 놓여 있었다. 마이랩의 크기는 토스트기 정도에 불과하지만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피 한 방울로 감기에서부터 암까지 즉석에서 바로 진단해 내는 게 마이랩이 꿈꾸는 미래다.
핵심 기술은 액체 대신 고체 형태의 젤로 혈액과 조직을 염색하는 독자 기법이다. 암 같은 질병을 진단하기 위해서는 인체 조직을 염색해 이를 판독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기존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피를 뽑아다가 특수 용액으로 조직을 염색했다. 하지만 마이랩은 ‘염색약’을 젤처럼 고체화해 피를 도장처럼 꾹 눌러주는 것만으로 조직을 염색해내는 기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물이나 하수처리 시설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염색 과정이 매우 단순해진다. 마이랩(작은 연구실)이라는 이름처럼 즉석 질병 진단이 가능해진 것이다.
임찬양 노을 대표는 “병원에서 진단 실험실 1곳을 운영하려면 인건비를 제외하고도 연간 3억원의 비용이 소요된다”며 “마이랩은 비용을 대폭 절감하면서도 질병 진단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말라리아의 경우에는 인간 진단보다 마이랩이 더 정확하다는 연구결과까지 나왔을 정도다. 노을은 말라리아 진단의 정확성에 대한 외부기관 임상 검증을 올해 안에 시작할 계획이다.
노을이 출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말라리아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의공학과를 나와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근무했던 이력을 갖고 있던 이동영 노을 공동대표는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을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고체 염색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를 사업화하기 위해 지난 2015년 죽마고우였던 임찬양 대표와 의기투합했다.
임 대표는 ‘공돌이(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출신이지만 파트너스인베스트먼트, 솔인베스트 등 벤처케피탈(VC)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고체 염색법을 미국에 특허 출원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친구자 변호사·변리사 출신인 김경환 최고리스크책임자(CRO)가 합류했다.
탁월한 기술력을 인정한 VC들의 투자도 이어졌다. 바이오 전문 VC로 최근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데일리파트너스가 대표적인 투자자다. 데일리파트너스는 지난 2월 30억원을 투자해 회사 지분 6.2%를 확보했다. 이승호 데일리파트너스 대표는 “제품이 출시될 경우 기존 시장 질서를 바꿀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판단했다”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매출도 기대하고 있다. 이르면 연내 시리즈C 투자 100억~150억원을 유치하고 내년에는 코스닥 상장도 추진하고 있다. 임 대표는 “진단 모듈과 카트리지를 모두 직접 생산하는 체제를 갖췄다”며 “바이오와 정보기술(IT)을 융합해 진단 플랫폼 시장을 개척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용인=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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