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방한을 앞두고 24일 삼성물산 건설 부문을 찾았다. 이 부회장이 비전자계열사인 삼성물산을 방문한 것은 지난 2016년 삼성물산·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공동 시무식 이후 3년5개월 만이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위기경영 상황에서 삼성전자뿐 아니라 계열사의 미래사업까지 직접 챙기는 경영 행보에 나선 것으로 해석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서울 상일동에 위치한 삼성물산 건설 부문 사옥에서 이영호 삼성물산 건설 부문 사장, 최성안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등과 오찬을 포함해 3시간30분가량 만났다. 이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중동지역 국가의 미래산업 분야에서 삼성이 잘해낼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보고 협력강화 방안을 마련해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며 “기회를 현실화하려면 기존의 틀을 깨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는 이 부회장이 26일 방한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와의 만남을 앞두고 사전점검을 위해 열렸다. 사우디에서 사실상 정상 역할을 수행하는 빈 살만 왕세자의 이번 방한은 300여명의 대규모 경제사절단과 동행하는 일종의 ‘경제 순방’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방한 기간에 이 부회장을 비롯한 주요 기업 총수들과 청와대 오찬을 함께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우디가 ‘중동판 실리콘밸리’로 추진하는 스마트시티 사업 ‘네옴 프로젝트’는 삼성전자뿐 아니라 삼성 EPC 계열사들과도 관련이 깊다. EPC는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따낸 건설사가 설계·조달·시공을 총괄하는 수주사업이다. 5,000억달러(약 579조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인 네옴 프로젝트는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의 EPC 역량을 결합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업 기회다. 빈 살만 왕세자와의 만남에서 이 부회장은 이들 계열사의 글로벌 사업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사우디와의 협력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이 부회장이 총수로서 본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인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실제 이 부회장은 올 초부터 미래 먹거리와 관련한 현장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올 2월에는 중국 산시성 시안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셰이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자와 만났다. 5월에는 일본 1·2위 통신사인 NTT도코모와 KDDI 경영진과 회동해 5세대(5G) 이동통신 사업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이달 들어서는 삼성전자 DS 부문을 비롯한 각 사업 부문의 경영진과 다섯 차례나 간담회를 열어 비상 경영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단기적인 기회와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말라” “어떤 경영환경 변화에도 흔들리지 말고 새롭게 창업한다는 각오로 도전하라” 등의 주문을 한 바 있다.
전자 계열사와 EPC 계열사를 방문한 이 부회장이 다음에는 금융계열사를 방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 사업지원TF가 사실상 붕괴한 상황에서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려면 오너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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