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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 日 회유에도...반세기만에 이룬 엔진주권

■꺼지지 않는 엔진

1958년 첫 국산엔진 생산·85년 디젤기술 자립

현대그룹은 미쓰비시 "개발 접어라" 압박 뚫고

91년 1.5리터급 개발·2004년엔 수출국 전환

韓 61년만에 車·건설기계·선박용 엔진 국산화

75톤급 우주로켓엔진도 2년내 개발 완료 목표





한국전쟁의 포성이 멈춘 지 불과 5년 뒤 국내 산업계에 낭보가 들려왔다. 지난 1958년 최초의 국산 엔진이 생산된 것. 주인공은 훗날 두산인프라코어로 간판을 바꾼 대우중공업의 전신인 조선기계제작소다. 완성품은 25~100마력급 선박용 디젤 내연기관이었다. 일제의 수탈로 산업기술을 축적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우리 조국이 해방 10년 만에 첨단산업 국가로의 도약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1985년에는 대우중공업이 차량용 디젤엔진 기술을 완전 자립시켰다. 순수 국내 기술로 탄생한 자동차 엔진 ‘스톰’이다. DNA를 이은 두산인프라코어는 독자개발 엔진 ‘G2’ 등을 통해 현재 전 세계 건설기계 및 농기계 엔진 분야의 강자로 도약 중이다.

첫 국산 엔진이 나온 지 61년, 대한민국은 ‘엔진 주권’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내연기관의 5대 주력 분야인 중 차량용 엔진, 건설기계 엔진, 선박용 엔진 등 3대 부문 기술은 국산화됐다. 나머지 주력 영역은 발전용 가스터빈과 항공우주 부문 엔진 분야인데 조만간 상당한 성과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1860년 유럽에서 내연기관이 처음 탄생한 후 서구사회가 약 160년간 다듬어온 엔진 산업을 한국은 약 반세기 만에 상당 부분 이룩한 것이다. 전기 및 수소에너지 시대로의 동력혁명이 가속화하고 있지만 배터리는 아직 기술적 한계를 풀어야 하는 숙제를 않고 있고 내연기관 기술은 진보하고 있어 근미래에도 계속 투 트랙으로 내연기관 기술에도 투자해야 한다는 게 정동수 한남대 기계공학과 교수의 시각이다.

엔진 개발의 백미는 기장 대중적인 차량 심장인 가솔린 내연기관이다. 한국에서는 1983년이 차량용 가솔린엔진 기술자립 추진의 원년이다. 당시 미국 주도의 보호무역주의가 본격화된 가운데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결단을 내 엔진 독자개발을 지시했다. 이듬해 용인에 설립된 파워트레인센터가 그 산실 역할을 맡았다. 현대차에 엔진 기술과 제품을 공급해온 일본 미쓰비시 측은 로열티를 절반 수준으로 할인해줄 테니 엔진 개발을 접으라고 회유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 회장은 흔들리지 않고 기술 독립을 시도했다.

한국 최초로 해외로 기술수출된 현대차 세타엔진


이후 7년간 총 500억원가량이 투자됐고 1991년 배기량 1.5ℓ급 알파엔진이 나왔다. 2004년에는 자동차 엔진 만년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됐다. 최대 배기량 2.4ℓ급 세타엔진이 완성돼 미쓰비시·크라이슬러에 로열티를 받고 수출됐다. 세타엔진은 수출실적 2,000만대를 돌파할 정도로 해외 시장에서 인정받았다. 세타엔진이 태어난 해에 현대차는 최초의 대형 승용차용 가솔린엔진도 완성했다. 6기통의 3.3~3.8ℓ급 람다엔진인데 완성된 다음 해인 2005년부터 준대형 그랜저TG와 대형 승용차 에쿠스에 장착됐다. 2008년에는 8기통 4.6~5.0ℓ급 타우엔진이 탄생해 이후로 현대차 기함(플래그십)급 승용차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차는 차량용 디젤엔진으로 2000년 개발한 승용차용 D엔진을 시작으로 2009년까지 승용차용 U·R엔진과 상용차용 F·G·H엔진을 잇따라 내놓았다. 이로써 승용차와 상용차 분야에서 가솔린과 디젤 엔진의 모든 라인업을 독자기술로 완성하게 된 것이다.

내연기관 중 가장 강력한 출력을 내는 것은 단연 선박용 엔진이다. 메이드인코리아가 석권한 분야이기도 하다. 현대중공업이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전 세계 선박용 엔진 10대당 약 3대는 현대중공업 제품이라고 보면 된다. 1972년 설립된 현대중공업은 조선사업에서 성장의 기회를 엿보았으나 주요 기술과 부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계에 직면했다. 특히 핵심 부품인 대형 디젤엔진은 선가의 10%가량이나 차지했는데 전량 일본·유럽에서 수입해야 해 가격경쟁력이나 납기 단축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선박 엔진 독자개발을 결심한다. 1978년 세계 최대의 선박용 엔진 공장을 완공해 대량생산의 토대를 마련했고 이듬해 6월 첫 선박 엔진을 내놓았다. 당시에는 선박 엔진 분야에서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들이 세계 최대 생산능력을 갖췄지만 설비 노후화로 정밀한 작업을 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현대중공업은 이 약점을 파고들었다. 8,400만달러를 해외에서 빌려 1,000분의1㎜ 단위까지 정밀 가공할 수 있는 컴퓨터 기반 설비 등을 구축했다. 이 전략은 주효했다. 첫 엔진 생산 후 불과 9년 후인 1987년부터 세계 선박용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다. 2000년 8월 완성된 ‘힘센 엔진’은 현재까지 1만대 이상 팔릴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됐다.





선박 엔진 한류의 또 다른 주역은 HSD엔진이다. 1999년 두산·삼성중공업이 합작해 자본금 50억원 규모의 독립법인으로 출범시켰다. 이듬해 대우조선해양도 대주주로 참여해 자본금을 확충했는데 2005년 두산그룹에 편입돼 두산엔진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지난해 두산그룹에서 계열 분리돼 HSD엔진의 사명을 복원했다. 계열 분리 후 독자생존의 과제 앞에 서 있으나 여전히 세계 선박 엔진 10대당 약 2대는 HSD엔진을 사용할 만큼 기술력과 생산 토대를 쌓았다.

항공·우주 엔진 시장에도 태극기가 꽂힐 날이 점점 다가올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2년 내 완료를 목표로 최초의 한국 독자개발 우주로켓 엔진(추력 75톤급) 개발을 순항시키고 있다. 항공 엔진 분야에서는 오는 2024년 국방용 무인항공기용 터보팬엔진 독자개발이 완료될 예정이며 이와 별도로 2023년까지 극초음속을 내기 위한 스크램제트·터보제트 복합추진기관용 기초기반기술 개발 작업이 진행된다.

발전용 가스터빈 기술은 아직 과제가 많이 남았지만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부터 국산화를 위한 국책연구가 이뤄졌다. 한국동서발전·전력연구원 등이 최근 수년 새 기술 확보와 산업생태계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두산중공업도 2014년부터 대형 가스터빈 상용기술 독자개발을 진행 중이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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