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모펀드(PEF) 규제에 대해 이렇게 전향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지 미처 몰랐다.”
9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1회 서경 인베스트포럼’에 참석한 한 대형 PEF 운용사 대표는 강영수 금융위원회 자산운용과장이 제2세션에서 진행한 ‘사모펀드 제도개편 추진방향’ 강연에 대해 “솔직히 깜짝 놀랐다”며 이 같은 소감을 밝혔다. 질적 도약의 갈림길에 선 국내 PEF 운용사들이 갖고 있는 성장전략 고민에 대해 정부가 나서 이처럼 상세한 수준의 제도적 해법을 마련했는지 미처 몰랐다는 것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분 보유 의무(10%룰)와 차입 및 대출 금지 등 3대 규제만 풀려도 PEF 성장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10%룰’ 폐지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10%룰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가 특정 기업에 투자할 때 해당 기업의 지분 10% 이상을 취득하도록 하는 규제다. 예를 들어 국내 PEF가 시가총액 약 270조원인 삼성전자에 투자하려면 최소 27조원을 들여 지분 10%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사실상 투자가 불가능하도록 막아놓은 조치다. 하지만 연내 10%룰을 폐지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투자 문호가 확 넓어진다. 지분 3~4%를 들고 기업 경영에 개입하는 한국판 ‘엘리엇’이 나타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는 것이다. 국내 대표적인 행동주의 펀드인 KCGI(강성부펀드)의 이대식 대표는 “사모펀드 관련 제도가 정비되면 ‘사회적책임투자(ESG)’ 분야에서 투자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돕기 위해서라도 10%룰이 없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다수 창업 기업들은 투자를 받더라도 경영권은 유지하면서 중장기적 성장기회를 찾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내 PEF들은 지분 10% 투자 규제에 묶여 바이아웃(buy out·경영권 인수) 딜로 투자 구조를 짜는 경우가 많다. 국내와 해외에서 투자 유치를 진행했던 송금 애플리케이션 ‘토스’의 경우 이 같은 제한 때문에 국내 투자 유치를 포기하고 싱가포르투자청(GIC)과 미국 퀄컴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토스는 지난 6월 말 현재 누적가입자 1,200만명을 돌파하면서 국내의 대표적인 핀테크 기업으로 자리 잡았으며 매각가 4,000억원 이상으로 추산되는 LG유플러스 PG사업부 매입을 검토할 정도로 덩치를 키웠다.
강 과장은 “국내 시장에서 해외 PEF들은 뛰어노는데 국내 PEF들은 도리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며 “글로벌 수준으로 PEF 규제를 완화하거나 없애는 게 금융위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개정안에 담긴 대출 규제 완화도 PEF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기대하는 분야다. PEF 운용사들 사이에서는 대출 규제 때문에 투자 기회를 놓쳐 아쉬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중국 기업인 더블스타로 넘어간 금호타이어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금호타이어의 지분과 채권을 동시에 매각하기를 원했다. 국내 PEF 중에도 금호타이어 인수에 관심을 드러낸 곳이 다수 있었다. 하지만 대출 금지 규제가 끝내 발목을 잡았다. PEF가 채권을 인수해 회사로부터 이자를 받을 경우 사실상 금호타이어에 대출을 내준 셈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규제 장벽에 부딪힌 PEF들은 인수를 포기했고 이에 따라 더블스타는 약 7,000억원에 금호타이어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제조 기업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두고두고 진한 아쉬움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실제로 금융위가 1995~2009년 사이 PEF 투자가 진행된 미국 중소·중견기업 3,784곳을 분석한 결과 매출과 고용이 1년 전과 비교해 각각 190만달러, 6.8명씩 증가했다. 이는 PEF 비(非)투자기업 매출 40만달러, 고용 1.5명 증가를 훨씬 앞지르는 수치다. 국내에서도 PEF가 투자를 집행한 할리스커피와 바디프랜드 모두 비슷한 형태의 순기능이 있었다고 금융위는 분석했다.
다만 사모펀드 개편안이 연내 국회를 통과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국회가 파행 끝에 이달 정상화 단계에 들어섰지만 여전히 다양한 변수가 남아 있어 법안 처리가 신속히 이뤄질지 판단하기 어려운 탓이다. 이번 개정안의 경우 여야 간 특별한 쟁점은 없어 의견 일치를 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그나마 긍정적인 요인이다. 강 과장은 “국회에서 연내에 통과를 시키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설명회를 여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연내 통과만 되면 내년 중 본격적인 시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