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빈이를 가진 것을 처음 알게 됐을 때 ‘나도 다른 이들처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고 다짐했던 그 시간을 자주 되돌아봅니다. 훌쩍 커 이제는 중학생이 된 영빈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편이 되어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울경제신문과 한샘이 공동 주관한 ‘제1회 한부모가정 수기공모전’에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아들’이라는 편지로 장려상을 수상한 정혜선(53)씨는 23일 서울경제와 만나 이렇게 말하며 아들에 대한 진한 애정과 애틋한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장려상을 받은 작품은 볼펜으로 촘촘하게 적어 내려간 A4용지 6장 분량의 편지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정씨와 어린 나이에도 엄마를 배려하는 열네 살 아들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긴 그의 글은 잠이 많아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아들을 ‘한 옥타브 높여’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로 시작한다. 사춘기 아이 훈육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는 여느 가정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장애와 한부모가정이라는 아픔을 함께 안고 있는 정씨가 짊어진 짐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정씨는 중증장애를 지녔던 남편과 장애인 직업학교에서 만나 결혼해 39세의 늦은 나이에 주변의 만류와 임신성 당뇨 등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어렵사리 영빈이를 만났다.
“남편이 ‘이러한 고통을 아이에게 되물림하고 싶으냐’며 출산에 완강하게 반대했지만 끈질기게 설득해 아이를 낳은 그날,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요.”
그렇게 영빈이를 제왕절개로 만난 날을 회상한 정씨는 “우리 영빈이가 어찌나 예쁘던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김밥 장사를 시작하면서 시댁에 아이를 맡겼던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였다”며 “제대로 된 세간살이 없이 시작했던 결혼생활, 하나둘 살림을 장만하며 열심히 살아보려 애썼던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다부진 각오를 다지며 거친 사회에 발을 내디딘 정씨였지만 그의 앞에는 또 다른 고비가 찾아왔다. 남편이 부족한 수입을 늘려보려 직장에서 주말까지 일을 계속했지만 결국 욕창에 걸려 가족 모두가 경제활동이 어려운 상태가 돼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동정이나 업신여김 없이 살아가고 싶다는 정씨와 기초생활수급자 상태에서 벗어나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고 좌절한 남편은 영빈이가 보는 앞에서 수시로 다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영빈이가 ‘아빠들이랑 모여 배드민턴을 치자’는 친구의 권유를 받고 아빠에게 운동장에 나가자고 했지만 아들의 간곡한 부탁마저 냉정하게 뿌리치는 남편에게 실망한 정씨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12년의 결혼생활을 마무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아이를 위해서만큼은 당당한 부모가 되겠다는 간절한 마음, 한부모가정이 된 지금도 그 마음은 똑같다고 말한다. “휠체어는 우리 엄마 다리”라고 똑 부러지게 친구들에게 말하는 영빈이에게 자신의 장애를 숨기거나 부끄러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을 감내했던 시간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우리 부부의 문제로 이혼하자는 결정을 내렸을 때 영빈이가 울부짖으며 ‘내가 잘못했으니 엄마랑 아빠 절대 이혼하지 말아달라’고 애원을 했어요. 못난 부모의 탓인데, 제 탓으로 돌리며 어떻게든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영빈이에게 지금도 미안합니다.”
정씨는 이번 한부모가정 수기공모 지원을 통해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려고 애쓰는 엄마의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낭랑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그가 팟캐스트 채널인 고양라디오 진행자로 활동하는 것도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라는 사회의 편견에 갇혀 타인의 눈을 피해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엄마로 남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아울러 부모의 장애에 이혼까지, 평탄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도 잘 자라주는 영빈이가 그런 엄마를 보고 앞으로도 꿋꿋하게 커 나갔으면 한다는 간절한 바람을 담았다.
“이혼 후 잠시 같이 살았던 친정엄마가 제게 ‘소아마비에 걸린 너를 그때 죽게 놔뒀어야 했는데’라고 말했을 때 마음이 너무 힘들었어요. 하필 그때 다리 역할을 했던 팔 수술까지 받는 바람에 영빈이에게 화도 많이 냈죠. 그런 일들이 상처가 됐는지 언제부터인가 영빈이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더군요. 너무나 미안해서 제가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어요.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영빈이가 부모의 이혼 등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오히려 이런 시간이 지나면 늘 그러했듯 사랑스럽고 착한 나의 아들로 커 줄 것으로 믿습니다. 사랑한다, 영빈아.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는 너의 편이란다.”
/이수민기자 noenem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