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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쇼잉'에 속타는 재계]"수없이 외쳐도 법안처리 외면 '귀닫은 정치쇼' 넌덜머리 난다"

"규제 완화 요청 하러 가면 민원만

국감에나 안불렀으면" 기업들 싸늘

지배구조 규제 놓고는 정반대 의견





“숙제를 풀러 국회에 가면 오히려 지역구 민원을 받아 돌아옵니다. 기대도 안 합니다. 입만 아픕니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경제현장 방문을 위해 사업장으로 내려간다는 대기업 대관담당 임원의 말이다. 정치인들의 기업현장 방문이 ‘쇼’에 불과한 것을 알면서도 그는 바쁘게 움직인다. 또 다른 대기업 임원은 “총선을 앞둔 시기에 국회의원들이 갑자기 민생을 챙기겠다며 기업인들을 만나는 것은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연례행사”라며 “기업이 원하는 바를 몰라 정치인들이 기업인을 만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럴 시간에 여당과 야당이 정책에 대해 협의하고 정부부처를 움직여야 실제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25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주요 기업 현안 간담회는 웃으며 시작했지만 민감한 이슈들에 대한 발언이 오갔다. 특히 기업인들은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기업이 힘든 상황에서도 강화되는 규제와 노동정책 등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기업인은 “실무를 담당하는 임원들이 발제 형태로 경제 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 등을 조목조목 지적했다”고 전하면서도 “당장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지배구조 규제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지만 여당에서는 오히려 ‘기업이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기업인은 “개별기업이 돌아가면서 발언했는데 지주회사법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찬대 민주당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지배구조와 지주회사 문제, 회계 투명성에서 자정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요구했다”며 “규제개혁 입법을 위해서는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적폐세력으로 몰았던 전경련과 처음 개최한 기업 간담회지만 기업들의 반응이 싸늘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정치권이 그동안 보여온 행태를 고려하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여주기식 정치쇼’를 한다는 인식도 강하다. 이제까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기업과 만남의 기회를 갖고 경제단체 대표들이 국회를 제집 드나들듯 찾았지만 정부와 여당의 정책 기조는 변화가 없어서다.





지난 6월17일 국회를 찾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탄력근로제 보완,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데이터 3법 등 경제 활성화를 위한 ‘조속입법’ 리포트를 전달했다. 재계의 오래된 요청인 서비스산업 선진화, 가업승계제도 개선을 비롯해 최근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선까지 재계의 요청을 오롯이 담았다. 박 회장은 “새로운 산업을 여는 물꼬를 틀 수 있게 법안 통과를 도와달라”고 신신당부했다. 3개월이 지난 이달 18일. 박 회장은 부산에서 열린 전국상공회의소 회장 회의에서 “요즘 우리 경제는 버려지고 잊혀진 자식이 아닐까 싶다”고 토로하며 “국민의 살림살이인 경제보다 더 중요한 정치사회 이슈가 무엇인지 걱정과 회의가 든다”고 했다. 20대 국회 들어 14번이나 국회를 찾았던 박 회장은 “이번 국회는 제대로 열린 기억이 없다. 국회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자동차산업협회 등 6개 자동차 유관기관도 이날 탄력적 근로시간제 보완을 정부에 요청했다.

하지만 재계의 요구는 정치권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여야 간 공방에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고 말았다. 재계 관계자는 “국정감사 기간에도 조 장관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질 것이고, 이후에는 총선 국면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기업들의 민생법안은 계속 방치될 것이 뻔하다”며 “제발 이번 국정감사 때 기업인 증인 채택이라도 줄여 괴롭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정부 여당의 기업 옥죄기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는 것에 오히려 만족해야 한다는 냉소 섞인 분석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상법 개정안은 총 62개로, 계류된 58개 법안 중 규제법안이 39개(67.2%)에 달한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경우 20대 국회에서 총 118개가 발의됐으며 계류 중인 109개 법안 가운데 규제법안은 69개로 63.3%를 차지했다. 유정주 한경연 기업혁신팀장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자사주 규제 법안 등 계류된 규제 법안 중 대부분이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고 자사주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라며 “만약 국회에 올라간 상법이 모두 통과된다면 기업 하기가 훨씬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재계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 정치권이 지역구 민원이나 의원 후원 등을 요구하는 구태를 반복할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재계 입장에서는 규제 완화 등을 위해 교류해온 정치권이 자신의 지역구 챙기기에 기업을 활용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선거철을 앞둔 시점에는 지역 민원을 해결해달라는 의원실의 요청이 많다”며 “만약 회사 규정을 들어 이를 거절하면 국정감사 때 증인으로 부르겠다고 겁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겉으로는 기업인들과 대화한다면서 속으로는 자기 잇속을 챙기는 모습에 넌덜머리가 난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김민형·박효정·김인엽 기자 kmh20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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