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사내이사 임기 만료가 다가오면서 삼성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8월 말 대법원의 판결로 이 부회장의 입지가 좁아지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칫 국정농단 관련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할 경우 일부 투자자들의 반발을 살 수 있고 물러날 경우 책임경영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의 눈치도 봐야 한다.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하고 일본의 수출규제까지 우리 경제의 목줄을 죄어오는 가운데 삼성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26일이 다가오면서 조만간 주주총회 소집 공고를 내고 재선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상법에는 사내이사의 경우 임기 만료 2주 전까지 주총 소집 공고를 내고 통지를 해야 한다. 따라서 이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주총 소집 공고는 주말 등을 고려하면 11일까지는 끝나야 한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아직 고민 중이다. 2016년 이 부회장이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될 당시에는 주총(10월27일) 한 달 전인 9월29일 주총 소집 공고가 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총 소집 공고를 내야 하는 시한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지금까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사내이사 선임을 두고 삼성전자가 고민하는 이유는 25일께로 예상되는 국정농단 사건 관련 뇌물공여 혐의 파기환송심이 가장 크다. 책임경영을 강조하며 국내외 사업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활발한 경영 행보를 보인 이 부회장에게도 재판은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여부가 사법부의 판단에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사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면 결국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어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법부뿐 아니라 투자자·경제시민단체들의 시선도 의식해야 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지분을 보유한 일부 외국계 투자자들은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사회책임투자(ESG) 투자자들이 이 부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건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삼성전자 최대주주인 국민연금도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앞서 국민연금은 3월 정기 주총에서 분식회계와 횡령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최태원 SK 회장의 ㈜SK 사내이사 재선임을 반대한 바 있다. 권종호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판결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국민연금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최근 국민연금의 결정을 보면 이 부회장 사내이사 재선임도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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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나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다. 이 부회장은 참여연대를 비롯한 경제시민단체들이 대기업 오너들에 대해 권한만 있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비판하자 2016년 사내이사를 맡으면서 책임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 부회장이 사내이사에서 물러날 경우 다시 책임경영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고 대주주로서의 역할만 하라는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삼성전자에는 부담이다. 이 부회장이 사내이사를 계속 맡든 물러나든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물러날 경우 리더십 공백으로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육성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인수합병(M&A), 삼성디스플레이의 차세대 디스플레이 투자와 같은 중요한 의사결정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더라도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이 부회장의 거취가 달라지게 된다. 삼성전자 경영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이는 투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외국계 투자자는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며 “외국계 주주의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부회장은 이날 한국을 방문한 이건희 회장의 일본 친구들(LJF) 멤버들을 초대해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JF는 교세라·무라타제작소·TDK 등 일본을 대표하는 9개 전자부품 회사 사장의 모임이다. 이 부회장이 LJF를 직접 챙기는 것은 최근 한일 갈등으로 중요해진 일본 부품 회사와의 협력관계를 공고히 다지기 위함이다.
/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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