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부에 산업정책이 있기는 한가요. 화관법·주52시간제 등 반기업정책도 산업정책이라면 할 말은 없네요.”
지난 1일 경총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한 대기업 임원의 목소리는 격양됐다. 제조업으로 지탱하는 나라의 정부가 그렇지 않아도 고임금·저생산성 구조로 기반을 잃어가는 기업들을 옥죌 정책만 쏟아내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의 제조업 비중은 지난 2017년 기준 30.4%로 주요국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제조 대국으로 불리는 독일(23.3%)이나 일본(20.3%)보다 훨씬 높고 29.3%인 중국보다도 높은 수치다. 미국의 제조업 비중은 11.2%다. 그럼에도 제조업정책은 뒷전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싼 정쟁이 지속되며 경제·산업정책은 아예 논의에서 사라졌다. 7월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 사태가 발생하면서 잠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육성하자는 움직임이 일었지만 조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정쟁에 파묻혀버렸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일본과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을 때는 구국의 결단처럼 ‘소·부·장’을 육성하자더니, 지금은 이마저 잊혀졌다”며 “‘극일’ 또한 쇼에 불과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기업을 외면하며 당장 하루하루가 위기 상황인 중소기업은 생존의 위협마저 느낀다. 직원 수 100명 정도인 한 특장차 업체의 김모 대표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주52시간 근로제만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다. 대부분 수작업인 상황에서 전문인력을 찾기도 어려운데 근무시간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기업들이 아우성인데 정치권은 광장 정치에만 열중하고 있다”며 “가뜩이나 저성장으로 힘든 판에 죄다 고비용을 유인하는 정책만 내놓고 부작용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고 한탄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이미 외환위기(IMF) 수준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인들은 정부가 심각해지고 있는 경제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있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다. 당장 근로시간 단축 문제만 해도 재계에서 1년 전부터 수정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변한 ‘탄력근로제의 단위시간(주당 52시간을 맞춰야 하는 단위 기간) 조정’에 진전이 없다. 업종·규모·숙련도에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적용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도 외면하고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정치권이 정쟁에 매몰 돼 국민 사이에 반목만 조장하다가 경제가 파국을 맞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의회 정치가 실종되면서 정책 홍보만 있고 실제 집행은 맹탕이거나 허술한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성장전략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달 18일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 회의에 앞서 “올해 우리의 경제성장률은 2%대 초반으로 전망되는데 정부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았으면 이마저 어려웠을 것”이라며 “경제 이슈를 놓고 논의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경제는 버려지고 잊힌 자식인가”라고 토로했다. 정치 이슈에 뒤덮여 경제에 대한 논의가 사라졌다는 우려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급변하는 글로벌 산업 환경의 변화 속에서 기업 홀로 싸우고 있는 느낌”이라며 “친기업 정책으로 정부가 뒤에서 밀어주는 다른 나라 기업들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박한신·이상훈기자 hs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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