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이 추락하고 수출량이 급감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경제를 너무 등한시했다는 비판이 나오니 기업 오너들을 ‘얼굴 마담’으로 활용해 여론을 달래려는 의도가 뻔히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보여주기식 행사가 실제 경제정책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죠.”
11일 한 5대 그룹 임원은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충남 아산의 삼성디스플레이 공장 ‘신규 투자 협약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난 것과 관련해 이같이 평가했다. 문 대통령이 삼성 공장을 찾은 것은 지난해 7월 인도 방문 당시 삼성전자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 지난 4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방문한 데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여권에서는 ‘누구보다 경제 현장을 많이 찾는 대통령’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조국 정국을 돌파하기 위한 ‘국면전환용 민생 행보’가 아니겠느냐”는 의구심과 함께 경제로 돌아섰다면 구체적인 액션플랜을 보여달라고 요구한다.
◇현장 방문보다 규제를 풀어달라=재계의 주된 불만은 “대내외 악재에 따른 투자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했는데 보여주기식 행사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과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화평법)은 문 대통령이 전날 방문한 디스플레이 공장을 운영하는 데 치명적인 규제로 평가된다. 법 시행 전인 2014년 12월31일 이전부터 가동하던 시설도 내년부터 저압가스 배관 검사를 받도록 소급 적용하면서 공장 전체를 멈춰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새로 짓는 공장은 기준에 맞춰 설계하면 되지만 기존 공장은 새 기준에 맞춰 저압가스 배관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반도체·디스플레이 공장은 특성상 배관이 하나의 라인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지분 대량보유 공시의무(5% 룰)를 완화하도록 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은 직접적인 경영권 위협 요인이다.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을 활용해 정부가 사실상 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연금사회주의’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국민연금이 정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정부의 기업경영 개입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 의견을 금융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은 “일방적인 시행령 개정이 아니라 경영 당사자인 기업의 입장이 충분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로 기울어진 힘의 균형이 탄생시킨 노동법안들은 기업을 옥죄고 있다. 경제단체의 한 고위임원은 “대통령을 만난 경제단체장들의 첫 마디가 노조 편만 든다는 지적이지만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기준을 반영한 정부입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문제는 법안에 해고자 및 실업자에 대한 노조 가입 허용,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완화 등 노동 단결권을 강화하는 내용이 대거 포함됐다는 점이다. 재계 관계자는 “사용자의 ‘대항권’은 없이 노조 권한만을 강화한 이 개정안은 기존 노사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며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및 일괄적인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으로 가뜩이나 부담이 큰 기업들이 ‘노조 리스크’까지 부담하게 됐다”고 우려감을 표했다. 경제계는 이번 노조법 개정안이 입법되면 강성노조에 악용될 소지가 클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이 삭제되면 풀타임 근로시간면제자의 편법적 활용을 적법화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근로시간면제제도는 근로제공은 없으나 해당 시간을 유급으로 인정, 노조 활동을 최소한의 한도에서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제도다.
금융지주회사법·공정거래법·상법 등도 대기업을 지나치게 옥죄는 법안들로 꼽히지만 정부·여당과 기업 간 온도 차가 크다.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한 기업 간담회에서는 지배구조 규제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한 기업인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주회사법과 공정거래법의 엄격한 금산분리 규정은 신산업 진출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규제로 꼽힌다. 스타트업 육성과 혁신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주도 벤처캐피털(CVC)도 일반 금융회사로 간주해 지주사가 지분을 갖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존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면서 기업들은 신사업을 육성해야 하지만 각종 규제에 가로막혀 투자를 하려야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원격의료 등 신산업 규제를 풀어 기업이 마음 놓고 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효정·양지윤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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