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에서 킥보드 구매 바람이 불면서 해당 제품이 교통혁신의 상징처럼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사실 현대적 킥보드 상품의 원형으로 볼 수 있는 이륜 스쿠터가 상용화된 지는 이미 100년이 넘었다. 기술적 원류 차원에서 이륜 스쿠터의 개념적 연혁을 따지자면 200년 이상의 역사를 되짚게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요컨대 킥보드의 기술족보는 짧게는 약 100년, 길게는 200년 이상에 이른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륜 스쿠터의 개념적 연혁을 보면 최소한 18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해 등장한 일종의 이륜 스쿠터인 ‘라우프마시너’가 스쿠터의 개념적 원류라고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은 평가하고 있다. 이 제품은 독일인 카를 폰드라이스 데 사우어브론 남작이 고안했다. 생김새는 원시적인 두 바퀴 자전거 같지만 바퀴를 돌리기 위해 발을 얹어 굴리는 페달이 없었다. 따라서 탑승자가 직접 발로 땅을 차는 방식으로 속력을 냈다. 요즘 흔히 ‘씽씽이’로 불리는 어린이용 수동 킥보드가 발로 직접 지면을 차서 구동력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벨로시패드의 개념은 이후 2~3륜 자전거나 킥보드 형태로 분화됐다고 스미소니언박물관은 설명했다. 브리태니카백과사전에 따르면 1840년 무렵 스코틀랜드에서는 후미에 발판이 튀어나온 형태의 모터 스쿠터도 등장했다.
현대적 개념의 킥보드 상용제품은 1915년에 등장한다. 미국 최초의 양산형 모터 킥보드인 ‘오토패드’다. 1913년 설립된 뉴욕 소재 기업 ‘오토패드컴퍼니’가 제작했다. 이는 현재 우리가 흔히 보는 킥보드와 비슷한 형태를 가진 원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대시속 35마일(약 56㎞/h)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오토패드는 배터리 전기로 구동하는 모델로도 제작된다.
오토패드는 미국 뉴욕우체국에 도입돼 우편배달에 쓰이며 주목받았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해변 리조트에서 유료 임대사업용으로 팔리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늘날 유럽 등 주요국 관광지에서 관광객 등을 상대로 이륜형 보행수단인 세그웨이 렌털 서비스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선구적인 사업가들은 이미 1세기 전에 희미하게나마 킥보드 공유 서비스의 잠재력을 감지했던 셈이다.
다만 오토패드를 비롯한 초창기의 모터 킥보드들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자전거보다 훨씬 비쌌고, 좌석이 없어 불편했기 때문에 폭넓은 대중적 수요를 창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논란도 일었다. 가뜩이나 미흡했던 당시 도로교통 안전체계에서 무법자처럼 돌아다니는 전동 스쿠터의 위험성이 지적된 것이다. 더구나 일부 비행청소년들이 오토패드를 타고 경찰을 피해 다니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흥행부진 끝에 오토패드 생산은 1921년 중단됐다.
킥보드의 계보는 1929년 미국 대공황의 여파로 되살아났다. 엔진 등을 제조하던 미국 기업 쿠시맨은 경기침체기로 엔진이 팔리지 않자 자사 엔진을 탑재한 값싼 모터 스쿠터를 제작해 재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 결과 1936년 ‘오토글라이드’라는 이름으로 전동 킥보드를 선보였다. 자동차나 오토바이보다 저렴하면서도 연비가 좋아 경기침체로 호주머니가 얇아진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1930년대 들어 미국이 교통법규를 엄격히 강화하고, 특히 청소년들의 도로교통 수단 운전에 대한 규제 수위를 높이면서 쿠시맨 오토글라이드 판매에 직격탄을 맞게 됐다.
최소 한 세기를 앞섰던 초창기 킥보드 산업의 부상과 침체는 오늘날보다 고성능화하고 정교해진 구동·조향기술로 무장한 전동 킥보드의 부흥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기술적 토대가 갖춰졌더라도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시대적 흐름과 맞아떨어져야 흥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관련 정책 및 규제당국이 해당 기술 활성화를 위해 산업적으로 접근할지, 아니면 단순히 교통안전행정의 좁은 틀에서 보수적으로 접근할지에 따라서도 산업의 흥망이 갈릴 수 있음을 반추할 수 있다. 우버·리프트와 같은 이동수단 공유 서비스 기업들이 ‘선 도입, 후 규제’ 방식의 미국 행정 덕분에 오늘날 전 세계 교통혁명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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