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 발달에 따른 뉴스와 광고시장의 지각변동으로 전 세계 미디어들은 격변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미디어 산업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그 바탕이 되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도 진행 중이다. 그 가운데 ‘구독 수입’은 하락하는 광고 수입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2011년, 워싱턴포스트는 2013년부터 유료독자 확보에 나섰다. 현재 뉴욕타임스는 구독수입이 광고수입을 넘어섰으며, 워싱턴포스트는 3년 만인 2017년부터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의 온라인뉴스 유료이용자는 2016년 9%에서 2018년 16%로 증가했다. 유럽에선 노르웨이(30%), 스웨덴(26%), 핀란드(18%) 등 북유럽 국가가 높은 성과를 거뒀고, 영국(7%), 독일(8%) 등이 뒤를 따르고 있다.
지난달 23일부터 5일간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참가한 독일 함부르크에서 개최된 ‘INMA(International News Media Association) 미디어 이노베이션 위크’ 행사에는 유럽의 주요 매체들이 디지털 구독 수입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모였다. 유럽의 크고 작은 언론사의 디지털 전환을 책임진 참가자들은 유료구독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했다고 평가하면서도, 까다로운 데이터 활용과 독자들을 붙들 수 있는 콘텐츠 생산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발표자들은 언론사의 목표가 ‘최대한 신문을 많이 파는 것’에서 ‘핵심 유료독자를 키우는 것’으로 전환됐다고 입을 모았다. 또 ‘독자와의 접점을 최대한 늘리는 것’보다 ‘이용자의 경험(user experience)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지적했다. 기존 구독자의 이탈을 막아야 구독 수입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의 화두 '구독자의 경험에 집중하라' |
독일의 주요 일간지 디벨트(Die Welt), 빌트(Bild) 등을 발간하는 악셀 스프링거(Axel Springer)에서 디지털 전략을 총괄하는 스테판 베츠골드(Stefan Betzold) 이사는 디지털 강자로 떠오른 악셀 스프링거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우리의 성장전략은 크게 ‘프리미엄 스토리텔링을 통한 구독 수입’과 ‘전자상거래 여행(e-Commerce journey)’로 요약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가 공을 많이 들이는 분야는 후자다. 베츠골드 이사는 “독자가 뉴스를 통해 신제품 출시 소식을 접하고, 리뷰 등을 통해 관심이 높아지고, 비교기사를 보면서 구매 결정을 내리고, 할인혜택을 챙겨서 아마존 같은 e커머스 플랫폼에서 구매하기까지 접점(touch point)을 늘려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구독자 확보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이들의 ‘소비 과정’까지 매체 안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쓰는 것이다.
지난 2014년 시작해 5년 만에 성공적으로 유료독자 기반을 구축한 노르웨이의 십스테드(Schibsted)는 구독 모델 구축과정을 △기존 콘텐츠의 강화 △가격 책정 및 결합상품 개발 △신규 구독 등 3단계로 설명했다. 특히 여러 가지 콘텐츠 조합을 갖추고, 방송·뉴스레터·팟캐스트 등 다양한 경험으로 기존 독자를 단단히 붙드는 두 번째 단계는 신규 독자를 확보하는 것보다 우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자와 같이 늙을 것인가, 밀레니얼과 함께 젊음을 유지할 것인가" |
디지털 시대에 미디어는 뉴스 제공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 개개인의 경험까지 관리해야 한다는데도 참석자들은 공감했다. 특히 인터넷과 모바일 생태계를 이끄는 밀레니얼 세대(1982~2000년생)와의 교감은 중요한 화두였다. 독일 주간지인 디 차이트(Die Zeit)의 크리스천 룁케(Christian Roepke) 책임자는 “독자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고 싶지 않다면 젊음을 유지하는 전략을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며 디 차이트가 구축한 정치 대화 플랫폼 ‘나의 국가가 말한다(My Country talks)’을 소개했다. 그는 “‘나의 국가가 말한다’는 완전히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일대일로 대면토론 하는 행사”라며 “지난 2017년 6월 1,200명이 사회 이슈에 대해 얼굴을 마주 보고 토론하기 위해 모였는데, 참석자들은 사회문제를 다루기 위해 직접 참여한다는 것에 대단히 만족했다”고 설명했다. 이 행사의 성공을 바탕으로 디 차이트는 ‘유럽이 말한다(Europe Talks)’도 치렀다.
인쇄 매체는 더 화려한 디자인과 퀄러티 저널리즘으로 부활했다. 영국 가디언의 주말판 ‘뉴 가디언 위클리’의 밀렌 실베스트르(Mylene Sylvestre) 담당자는 “주말판은 7명의 팀이 투입돼 일주일간 나온 기사를 재구성하는데 마진율이 46%에 이를 정도로 수익성이 높다”고 소개했다. 그는 “주중에 나오는 신문과 달리 주말판은 실력파 디자이너들이 표지뿐 아니라 내부까지 강렬한 디자인을 도입, 독자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고 말했다.
언론사 의사결정, 경험 기반→데이터 기반으로 전환 |
모든 디지털 전략의 토대는 ‘데이터’다. 과거에 언론사는 경험에 기반한 톱다운 식 의사결정이 주를 이뤘지만, 이제는 데이터가 정확한 의사결정의 근거가 된다. 이 때문에 미디어들은 구독자의 취향과 행태를 세밀하게 읽어내기 위한 인덱스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독일의 대표적 주간지 슈피겔은 ‘유료 독자에게 제대로 된 기사가 찾아갔나’를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삼는다고 설명했다. 빕케 미데어(Wiebke Meeder) 담당자는 “돈을 지불한 독자에게 우리가 적합한 기사를 잘 추천하고 있는지를 가장 눈여겨본다”며 “편집국 기자들은 대시보드를 통해 내 기사가 언제, 어디에서, 얼마나 팔렸는지 구독자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르웨이 푼케 미디어그룹(Funke Medien Gruppe)의 루스 베츠(Ruth Betz) 책임자는 “4명의 에디터가 ‘기사 점수(article score)’를 만들어 독자를 유입시킨 기사, 읽는 시간이 긴 기사를 점수화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좋은 기사를 썼어요. 읽어보세요’라고 했다면 이제는 처음부터 ‘독자 최우선(User First)’을 기준으로 기사를 판단한다. 기준이 바뀌자 기사 출고시간, 회의 등 기존의 일하는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미국 시애틀타임즈도 지난 2013년 편집국에 대시보드를 전격 도입했다. 앨런 피스코 시애틀타임즈 대표는 “각 섹션별, 기자별로 구독 데이터를 분석, 기자 개인이 본인의 데이터를 체크할 수 있는 페이지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미디어 전환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는 신문제작 부문의 비효율을 정리하는 일도 빠뜨릴 수 없다. 언론사들은 신문 마감시간을 앞당기고, 기사편집과 신문제작 과정을 자동화하는 등 신문 부문의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 집중했다. 신문은 뉴스를 공급하는 ‘채널 중 하나’일 뿐,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통해 확보한 인력과 시간은 모바일에 집중 투입됐다. 과거 신문 판매부수만 챙기던 판매부서는 ‘상품 개발’ 및 ‘프리미엄 구독 관리’로 전환됐고, 다양한 상품에 책정된 높은 가격은 전체적인 신문 구독자 이탈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매출을 끌어올렸다.
구독 관리도 중요해졌다. 노르웨이 미디어그룹 십스테드(Schibsted)의 마리아 너빅(Maria Nervik)은 “구독을 해지한다고 바로 해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구독 휴가기간 설정 △대체품인 주말판 구독 △구독중단 기간에도 회원혜택 제공 등 다양한 장치를 만들어 최대한 독자를 붙든다”고 소개했다. /함부르크=이연선기자 bluedas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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