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없이 한국에서 제조업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조업을 하기 어려워요. 저희가 하는 친환경 재활용 소재는 글로벌 업체들이나 중국·일본에서도 많이 주목하는데 말이죠.”
버려지는 소가죽 조각을 재생해 글로벌 업체에 명품 핸드백이나 운동화용으로 수출하는 벤처기업인 아코플레닝의 김지언(46) 대표는 최근 경기도 파주공장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오라고 했는데도 거절했다”며 “우리도 제조업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16년 파주에 공장을 짓기 전에 수도권 여기저기를 물색했지만 10여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공장을 짓느라 재무구조가 일시적으로 나빠졌다고 올해는 아예 국가 연구개발(R&D) 과제에 입찰도 하지 못하고 있다. 올 상반기 벤처캐피털로부터 75억원 규모의 투자(총 130억원)를 받아 자본잠식을 해소하고 부채비율도 10%대로 낮췄지만 지난해 재무제표가 나쁘다는 이유로 입찰에서 배제된 것이다.
김 대표는 폐가죽을 다양한 굵기의 실로 만들어 천연가죽에 가까운 재생가죽을 만든다. 지난달에는 섬유·액세서리·가죽 등을 다루는 세계적 전시회인 파리 프레미에르 비종(PV) 가죽 부문에서 심사위원 최고상(Grand Jury Prize)을 받았다. 우리 기업이 PV 어워드에서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한국에서만 연간 60만톤씩 폐가죽이 버려지는데 이를 재생하면 환경을 보호하고 부가가치도 높일 수 있어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그도 제조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버겁다고 털어놨다.
우선 과거 7건이나 국가 R&D 과제를 받았는데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만들자 오히려 올해 R&D 지원 자격이 끊겼다. 그는 “공장을 지으며 지난해 말까지 재무구조가 좋지 못했는데 올 상반기 추가로 투자를 받아 자금경색을 해소했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글로벌 업체들이 속속 고객이 되는 유망기업인데다 재무제표도 크게 개선했으나 지원은 끊기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 등에서 R&D 과제를 공고할 때 자본잠식이거나 2년 연속 부채비율이 400~500%에 달하면 과제 지원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에 따른 것이다. 물론 일시적으로 자본잠식 상태이거나 부채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을 증명하면 예외로 인정하나 실제 그런 사례는 거의 없다고 공무원들도 고백한다. 창업 후 3년간 국가 R&D 입찰 자격에서 이런 기준 적용을 유예해주는 규정이 있으나 제조사가 거액이 드는 공장을 세우는 동안에 우량 재무구조를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렵다.
김 대표는 “제조 분야의 벤처·스타트업이 데스밸리를 넘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이게 안 돼 어려움이 많다”며 “재무구조를 따지는 기준도 분기나 반기 단위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를 같이하고 고용창출에 대해 가점을 줘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구분해 지원하고 재무구조가 좋거나 기업 규모가 큰 곳이 유리한 R&D 지원 관행도 개선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부의 특허 지원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정부가 발명진흥회 등을 통해 변리사 비용 150만~200만원을 지원하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쉽게 특허도 내주고 벤처에는 특허 우선 심사도 해준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특허의 질이 낮아 외국에서 거절도 많이 당하고 외국 업체가 우리 특허를 조금만 바꿔 회피하는 식으로 역공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떤 특성으로 소재의 우수한 물성이 나온다는 식으로 하지 않고 소재를 만드는 방법만으로 특허를 내 글로벌사가 특허를 우회해 베낄 수 있다는 것이다. 방어용은 물론 공격용 무기로 특허를 쓸 수 있게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데 무슨 공식처럼 쉽게 특허가 나 탄탄하지 못하다고도 했다. 그는 “미국 특허를 내기 위해 의뢰한 현지 로펌 변호사가 ‘한국에서 특허가 엉망이라 영어로 바꾼들 어떻게 방패막이가 되겠느냐’ ‘유사특허를 만들기가 너무 쉽다. 기술은 좋은데 다 뺏길 수 있다’고 지적하더라”고 전했다. 글로벌 업체가 적반하장 격으로 유사특허를 만들어 침범해도 소송에서 질 수 있다는 말이다.
정부 R&D를 할 때 과제 기한 안에 반드시 특허를 내야 하는 규정도 꼬집었다. 김 대표는 “아직 성공하지 않았어도 2년짜리 등 기간이 차면 억지로 특허를 내야 한다”며 “기간이 종료되더라도 회사 돈으로 과제를 마무리하고 특허를 낼 수 있게 바꿔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정부 R&D 과제 성공률이 98%에 달하나 사업화는 극히 부진한 현실을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그는 “주변 기업들 중 정부 R&D 자금을 연구소 운영을 위한 지원금 정도로 생각하는 곳이 많다”며 “창투사가 투자했거나 국책연구기관에서 추천한 곳에 가산점을 주면 사업화 비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대표는 공장을 지을 당시 어려움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글로벌 업체 수출과 원활한 인력수급을 염두에 두고 수도권에 공장을 지으려고 했지만 번번이 좌절을 겪었다. 10여개의 지자체가 민원이 발생할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폐기물 재활용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화학물질을 쓰지 않고 가죽을 재생해 폐수가 발생하지 않는 혁신 기술을 쓰는데도 말이다. 그는 “다행히 파주시에서 폐기물 재활용 허가를 내줘 공장을 지을 수 있어 무척 고마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동네 주민을 상대로 두 차례 설명회를 열고 공장의 깨끗한 환경을 선보이고 동네 발전기금도 내놓는 과정을 거쳐 동의서를 받았다.
인력관리에 대한 애로도 설명했다. 임직원 34명 중 현장 직원이 26명인데 우리 젊은이들 중에는 한나절 일하다가 ‘재미없다’며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최장 7년까지 일할 수 있는 외국인 산업연수생(8명)을 위해 ‘베트남 문화의 날’ ‘몽골 문화의 날’을 개최하며 배려한다. 글로벌 경영 기준에 맞춰 근무 중 휴대폰 사용 불허 등 ‘안전제일’ 원칙에 대해서도 단호하다. 그는 “아차 하는 순간 장갑이 롤러에 말려 들어가 손만 빠져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중국에서 ‘땅을 무상 임대하고 설비자금도 연리 1%로 줄테니 혁신기술만 가져오라’는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며 “정부 기관과 지자체에서 지원도 많이 받아 힘들더라도 국내에서 사업하며 수출을 많이 해 세금도 많이 내고 고용을 창출하자는 게 모토”라고 활짝 웃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She is..
△1972년 서울 △1996~2006년 금강핸드백 등 피혁 디자이너 △2006~2009년 에스콰이아 ‘소노비’ 디자인 실장 △2009~2010년 인디에프 잡화사업부 디자인·기획 총괄 △2011~2012년 이랜드월드 브랜드 잡화 기획 총괄 △2014년 아코플레닝 창업 △2019년 파리 프레미에르 비종 가죽 부문 심사위원 최고상
●아코플레닝은
폐가죽서 실 뽑아 가죽원단 만들어...“혁신기술로 고부가 창출”
벤처기업 아코플레닝은 소가죽 조각으로 천연가죽에 버금가는 원단소재를 만들어 글로벌 패션·운동화 업체 등에 수출한다. 폐기물을 보물로 탈바꿈시키는 연금술사인 셈이다. 김지언 대표는 “현재 자투리 소가죽을 피혁업체에서 무상으로 받아 물을 쓰지 않고 다양한 굵기의 실을 추출해 가죽 원단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친환경 방식으로 한 번 사용한 가죽제품을 재생하는 기술도 이미 확보했다. 폐가죽 분리수거가 이뤄지면 언젠가 이 분야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부터 아르마니에 재생가죽 시트를 수출해 여성 핸드백과 쇼퍼백을 만들도록 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아디다스에 운동화 겉면용 재생가죽 원단 공급에 들어갔고 오는 2024년까지 의류·가방용 등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타미힐피거·케이스위스·팀버랜드 등이 고객이고 아식스·뉴발란스와도 협의하고 있다. 볼보와는 자동차 시트용 원단 공급도 논의하고 있다. 내년 말에는 파주 공장을 이전, 증설해 생산량을 하루 2톤에서 8톤으로 대폭 늘릴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매출도 올해 15억원에서 내년 100억원으로 늘고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때쯤 나이키에도 운동화용 원단을 수출할 방침이다. 국내에서는 최근 제일모직의 빈폴에서 처음 패션용으로 쓰기로 했다.
김 대표는 “글로벌 기업들은 환경도 지키고 계속 재활용할 수 있는 가죽 재생 사업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 회사는 폐가죽을 실처럼 뽑아 섬유화한 뒤 건식재생 방식으로 일정 온도·수분·압력을 가해 천연가죽에 가까운 품질을 낸다. 재생을 반복할 수 있고 기존 가죽 시트보다 30%가량 가볍다. 인조가죽보다는 다소 비싸다. 재생 과정에서 화학 폐수가 발생하는 습식재생 방식보다 장점이 많다.
앞서 김 대표는 금강핸드백·에스콰이아·이랜드에서 피혁 디자이너 등으로 근무하다가 2014년 창업했다. 그는 “2008년 광우병 시위 당시 소를 도살하는 영상이 너무 잔인해 한동안 식사도 하지 못했다”며 “소 한 마리의 가죽이 50평(가죽 한 평은 30.4㎤) 정도인데 이걸로는 서류가방 5개밖에 만들지 못해 재생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술회했다.
그는 “섬유 등을 사양산업으로 치부해 해외로 빠져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며 “혁신기술로 얼마든지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외국 업체들도 적잖게 찾아오는데 우리도 관점을 바꿨으면 한다”며 “그러려면 역동적인 기업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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