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성차 업체 연구개발(R&D) 담당 임원 A씨는 정부의 환경 규제가 발표 될 때마다 한숨이 깊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규제는 강화되지만, 이에 맞춰 개발하거나 연구할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30일 자동차산업협회 주최 ‘자동차산업 발전 포럼’ 현장에서 만난 A씨는 “한정된 인력으로 연구·개발하기에도 벅찬데, 규제에 맞춰 인력을 배치하기가 힘들다”며 “업계나 국내 상황에 맞게 순차적으로 규제가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발표가 되다 보니 쫓아가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한국의 자동차 생산량이 7위로 하락했다. 한 해 동안 403만대를 생산하는데 그치며 멕시코에도 밀린 셈이다. 여기에 10대 자동차 생산국 중 유일하게 3년 연속 생산이 감소했다. 세계 자동차 생산량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4.1%로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자동차 부품업체 순위도 한국이 중국에 밀리며 세계 5위로 하락했다.
자동차 산업은 국내 대표적인 주력산업이다. 한때 자동차 강국으로 손꼽히던 한국의 경쟁력이 줄어드는 데는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 강한 규제 등이 이유로 거론된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국내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 정책이 절실하다”며 “연비 및 배출가스 등의 환경 규제, 안전과 소비자 관련 규제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정부는 온실가스·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환경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이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와 유럽의 조항들을 반영해 나온 결과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환경규제가 캘리포니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의 환경규제가 강한 것은 로키산맥 등 지리적인 요인으로 공기 순환이 되지 않아 미국 내 공해가 가장 심한 8개 도시가 캘리포니아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규정만을 도입해 실제 상황과 괴리감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에서 제일 가솔린 규제가 강한 미국, 디젤 규제가 강한 유럽에서 이산화탄소 규제를 가져와 적용해 국내 환경규제는 세계에서 가장 센 수준”이라며 “자동차 업계 경쟁력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수입차 업계에서도 규제의 장벽이 높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2015년 폭스바겐 ‘디젤 게이트’ 이후 각종 인증을 강화했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까다로운 인증 절차로 인해 신차 출시가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여기에 생산연도가 바뀌어 같은 부품이라도 모델 코드명이 변경될 경우 부품 하나의 인증을 새로 받아야 해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유연근로시간제 확대, 근로시간 단축 시행시기 연장법안 등도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제로 거론된다. 정부는 근로시간을 1주일에 52시간으로 단축시킴과 동시에 자동차 및 부품판매업 등 근로시간 특례업종도 5개로 축소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완성차업체는 주간 연속 2교대제 시행으로 주 52시간 근로시간제를 맞추고 있다. 하지만 중소부품업체는 원청업체의 주문물량 확대 시 납기일을 맞추지 못할 뿐 아니라 시설투자와 추가 고용 여력이 없는 업체는 생산을 중단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자동차산업연합회는 근로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규제 개선을 요구했지만, 입법화가 부진한 상태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규제에 노사근로 규제까지 불필요한 규제들로 인해 현대기아차(000270)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은 해외 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다”며 “기술을 선도하기 위해 규제를 너무 강화하다 보니 업계가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라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도 진행이 더딘 상태다. 기술을 개발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규제들로 인해 시험운행이나 상용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해외의 경우 완전무인자동차의 상용서비스를 위한 규제개선은 물론 기술력까지 확보했다. 미국은 자율주행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수출장벽까지 입법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각 주별로 완전자율주행자동차 시험과 운행촉진을 위한 규제개선을 위해 정책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면제제도를 통해 향후 3~4년 이내에 기존 자동차의 안전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운행할 수 있는 자율주행차를 각 회사별로 10만대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도로교통에 관한 비엔나 협약은 자율주행차 운행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개정됐고, 독일은 2017년 5월 자율주행차를 허용하는 입법을 완료했다. 스위스는 비엔나 협약을 기반으로 자율주행차를 운행하고 있고, 일본 역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입법정비 계획을 수립했다. 이상길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수석은 “자율주행차 주행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책임제도를 보완하는 것”이라며 “입법 이전 정부 차원의 자율주행차 도입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거나 개별법령의 보완,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시진기자 see12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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