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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탈] '청각장애인'이 되어 택시 운전을 해봤다

수상한 택시 아닙니다, 청각장애인이 운행하는 ‘고요한 택시’입니다. (출발하기 직전 기자의 모습.)




“잠실운동장으로 가주세요.”

“지금 잘 안 들립니다, 죄송합니다.”

“에고, 그럼 어떡하나?”

지난 주말(25일) 기자는 택시 기사로 변신, 반나절 동안 서울 강남 일대를 다니며 택시를 운행했다. 30대 직장인들과 70대 할머니, 수능을 앞둔 고3 여학생과 40대 여성, 20대 남학생 등 총 7명을 손님으로 모셨다. 그런데 이날 기자는 손님에게 말을 건네지도, 말소리를 듣지 않으려고도 노력했다. 이 택시는 조금 특별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택시 ‘고요한 택시’ 얘기다.

지난해 6월 세상에 등장한 고요한 택시는 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첫 민간 택시운송 서비스다. 현행법상 청각장애인도 운전을 하는 덴 문제가 없다. 택시 면허를 얻는 데도 제한이 없다. 하지만 사회의 편견과 시선은 그렇지 않았다. 고요한 택시는 이를 해결해보고자 했다. 대학교 창업동아리에서 만난 청년들이 아이디어와 기술을 모았다. 청각장애를 가진 이가 운전을, 그것도 택시 운전을 한다고 하니 세상이 놀랐다. 조금씩 알려지면서 이들을 돕겠다는 택시 회사나 대기업도 차츰 생겨났다. 지난 7월엔 문재인 대통령도 직접 택시를 타보며 “이런 서비스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현재 남양주, 경주 그리고 서울 등지에서 총 13대의 고요한 택시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 먼저 승객으로 타보니 …뒷차 접근에 눈으로 먼저 보고 속도↓

손님으로 먼저 고요한 택시를 타보기로 했다. 경기 남양주 소재 한 택시회사로 찾아갔다. 곧 택시 한 대가 주차장 안으로 수우욱 들어오더니 후진 주차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운전석에서 내린 이는 바로 고요한 택시를 운행하는 김진태 영훈운수 기사님이다.

청각장애인 택시 기사 김진태 씨.


김 기사님이 스마트폰을 꺼내 기자 입에 가까이 댔다. 기자가 “반갑습니다”라고 말하자 음성자막 앱이 말을 인식해 실시간 글자로 표출됐다. 택시 뒷좌석에 앉으니 보조석에 달린 태블릿 모니터에서 “안녕하십니까, 청각장애인 기사님이 운행하는 택시입니다”라는 안내 메시지가 들렸다. 기사님이 태블릿을 보라고 손짓하셔서 보니 목적지를 입력하게 돼 있었다.

목적지는 고요한 택시 본사가 있는 선릉이다. 입력 버튼을 누르니 운전대 옆에 부착된 또 하나의 태블릿에 번쩍거리는 화면과 함께 똑같이 목적지가 표기됐다. 화면을 확인한 기사님은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기사님은 출발하면서 카오디오로 가요를 틀어주셨다. 본인은 잘 들리지 않지만 손님을 위해 마련한 ‘센스있는’ 서비스였다. 잠시 신호대기 하는 사이 모니터를 이용해 기사님에게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기사님도 ‘^^(웃음)’ 이모티콘을 보냈다.

사람들은 청각장애인이 운행하는 택시를 만났을 때 당황한다고 했다. 불안한 마음에 그냥 내리는 사람도 많고 일부 택시 호출앱 이용자들은 ‘평점 테러’까지 줘서 운행을 못하게 방해하기도 한다고. 솔직히 기자도 처음에는 좌석에 앉자마자 안전벨트부터 찾았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안전 운행에 대한 불안감은 가셨다. 다만 남양주에서 선릉까지 40km 거리, 왕복 요금을 드려야 하니 택시 요금이 얼마나 나올지 불안할 뿐이었다.

청각장애인 택시 기사님과는 태블릿을 통해 소통할 수 있다. “날씨가 좋다”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기사님이 ‘웃음’ 이모티콘을 그려서 보내주신다. / 강신우 기자


서울 방면 고속도로에 올라서자 기사님은 빠르게 지나가는 차량들 사이로 능숙하게 차를 진입시켰다. 속도는 점점 빨라져 100km에 가까워졌다. 기자가 잠시 전화 통화를 하고 끊었더니 어느새 노래 크기가 줄어 있었다. 전화 통화하는 걸 어떻게 아셨는지, 방해될까봐 소리를 줄인 것이다. 통화가 끝난 뒤에도 노래는 다시 켜지지 않았다. (이럴 땐 기사님에게 ‘라디오 틀어주세요’라고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서울 도심에 들어서자 차량 소통이 급격히 많아졌는데, 그만큼 백미러를 통해 바라본 김기사님의 눈빛 또한 분주해졌다. 기사님이 차선 변경을 시도하는데 뒷차가 ‘빵빵’ 신호를 보냈다. 백미러로 기사님의 눈을 쳐다보니, 기사님 역시 이미 백미러와 사이드미러로 뒷차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기사님은 속도를 늦추더니 뒷차를 먼저 보내고 뒤따라 차선을 변경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기자는 ‘여기서 내릴게요’ 버튼을 눌러 하차를 알렸다. 골목길에 진입해서는 태블릿을 누를 타이밍이 애매해 손짓과 눈치로 방향을 다급히 전달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운전할 때 전후방 주시만 잘한다면 ‘듣는 능력’이 크게 좌우할 듯 여겨지진 않았다. 택시비 계산 뒤 내리려고 하니 기사님이 두 손으로 ‘X자’를 그리셨다. 처음엔 기자가 뭘 잘못했나 싶었는데 뒤늦게 눈치챘다. ‘감사하다’는 수화였다.

■ 자 이번엔 직접 운전해볼 차례!…태블릿으로 소통, 은근히 편하네



이제 직접 고요한 택시를 운행해볼 차례다. 코액터스 주식회사의 도움으로 개인 차량에 손님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태블릿을 설치했다. 차량 외부엔 택시 로고도 멋지게 부착했다. 진짜 택시는 아니기에 아무도 안 타면 어떡하나 걱정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유상 운송은 불법이라 무료로 태워드립니다”라고 했더니 다들 감사하게도 그냥 타셨다.

손님이 타면 우선 체험 취지를 설명한 뒤 태블릿에 목적지를 입력하시라고 눈짓, 손짓을 보냈다. 그런데 이게 만만치 않았다. 태블릿 사용법을 알아도 손보다 말이 늘 먼저 앞섰다. 첫 손님이었던 선릉 지역 직장인 장우석(38) 씨는 꽤나 답답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내 의사가 바로바로 전달이 안 되니 조금 무서웠다”면서 “뭔가 급박한 상황에서 버튼을 눌러 빠르게 말을 건넬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되면 좋겠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런 버튼이라고 했다. “토하고 싶어요”, “화장실 급해요”…아이디어 좋은데요?

20대 홍민표(29) 씨도 무서웠다고 했다. 갈 길이 급하니 타긴 했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이런 택시가 있는지도 몰랐고 타본 적도 없으니 가는 내내 불안했다고 했다. 그의 목적지에 가까워졌을 때 운전석 화면으로 ‘우회전 해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들어왔다. 태블릿 활용 능력 인정! 그런데 이번엔 기자가 덜컥 겁이 났다. 바로 앞 골목에서 우회전인지, 코앞 사거리에서 우회전인지 헷갈리는 거다. 손님한테 물어볼 수도 없어 그냥 찍었다. 사거리까지 조금 더 가서 우회전했더니 ‘여기서 내려주세요’ 메시지가 도착했다. 진짜 급해 보이는 손님을 태웠는데 길까지 헷갈리니 기자 역시 많이 답답하고 당황스러웠다.

송파구 주민 서지희(44) 씨는 택시 기사 걱정부터 했다. 술 취하신 분들이나 고약한 사람들이 타면 장애인이라고 해코지할 수도 있을 테니 안전 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본인 아버지도 장애인이시라고 했다. 그는 “이 택시 운전처럼 정말 장애인들도 마음 놓고 세상에 나와 당당히 일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면서도 “다들 바삐 살다 보니 주변 장애인까지 돌아볼 여력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북구 주민 박통자(74) 씨는 70대임에도 생각보다 기기를 잘 다루셨다. 역시 IT 강국이다. 다만 방향 추가 설명과 같이 기사에게 따로 하고 싶은 말씀은 모두 손이 아닌 말로 하셔서 기자는 어쩔 줄 몰랐다. 결국 ‘못 듣는 연기’는 멈추고 고요한 택시의 사업 취지를 다시 말씀드렸더니 크게 공감하셨다.

왼쪽은 택시 기사 시점에서 보이는 화면이고, 오른쪽은 승객 시점에서 보이는 화면이다.


잠실 학원가를 지나다 김나윤(19) 양을 손님으로 맞았다. 그는 목적지 입력을 음성인식으로 시도했다. “OO사거리 지나서 가다 보면 스O벅O가 나오는데 그 앞에서 내려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지만 운전석으로 전달된 메시지는 조금 달랐다. 기자는 들리니까 다른 걸 알지, 진짜 고요한 택시 기사님이었으면 꼼짝없이 몰랐을 터였다. 몇 번 더 해보다 결국 타이핑으로 전환했다. 그 외에는 택시에 크게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고 했다. 이런 ‘터치’ 방식의 기술과 서비스에 이미 익숙하다고 했다. 기자에게 “(학생 때) 수능 잘 보셨느냐”고 묻길래, “정해진 길로만 가면 막힐 수 있다, 우회로도 있다”고 답했다. (수능 앞둔 수험생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한 건가…)

마지막으로 태웠던 강남 주민 조병민(31) 씨는 이번 체험에 가장 협조적인 손님이었다. “저에게 말씀하셔도 못 듣는다”고 했더니 혼잣말로 “우와, 신기하다”고 하시더니 곧잘 태블릿으로 목적지를 슥슥 입력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이날 오후 서울 강남 일대에서 고요한 택시를 운행해본 결과, 사람들이 기계 조작법만 익숙해진다면 청각장애인들의 택시 운행에 큰 장애는 없어보였다. 코액터스는 현장에서 뛰고 있는 청각장애인 분들은 모두 운전 경력이 상당한 배테랑 운전자 분들이어서 차량 운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 청각장애인도 운전이 가능한지, 우린 왜 몰랐을까

지금까지 청각장애인이 택시 운행을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손님이 택시에 탔을 때 목적지가 어디인지, 어디쯤에서 내려야 하는지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택시뿐일까. 청각장애인이 일터에서 다른 장애인보다 소외될 가능성이 많다는 건 통계로도 확인된다. 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국내 250만 여명 장애인 가운데 임금근로자의 37%가 일용직 등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특히 청각장애인의 비정규직 비율(64.2%)은 지체장애(55.8%), 시각장애(58.6%) 등 다른 장애에 비해 높은 편에 속했다.

고요한 택시는 바로 이 문제를 자체 개발한 스마트 앱을 통해 해결했다. 코액터스는 지난 3월 SKT, SK에너지와 업무 협약을 맺고 청각장애인 맞춤 T맵 서비스를 만들고 음성인식 기술을 지원받았다. 최근에는 앱 개선작업을 거쳐 승객이 직접 내비게이션을 입력할 수 있도록 기능을 업그레이드했다.

고요한 택시를 운영하는 송민표 코액터스 대표 / 강신우 기자


사업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고요한 택시 서비스를 운영하는 송민표 코액터스 대표(26)는 “서울시 택시회사 200여 곳 중 절반 넘게 찾아가 (사업 모델에 대한) 설명을 드렸는데도 모두 거절했을 만큼 청각장애인 고용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비스 초기 어려움을 겪을 때 먼저 손을 내민 곳은 김진태 기사님이 사는 경기 남양주시 택시회사다. 신안, 영훈, 금성운수 등 남양주 3개사가 마음을 모아 코액터스에 청각장애인 기사 고용 의사를 먼저 밝혀왔고, 남양주시 공무원들과 함께 지속적인 설득 끝에 어려운 여건을 뚫고 첫 청각장애인 택시 기사가 탄생하게 됐다.

고요한 택시가 달린 지 1년 6개월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청각장애인 기사의 사회 진출은 더딘 편이다. 일단 택시 면허를 따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자격시험 자체가 장애인에게는 너무 어려운 데다,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 자체가 이들에겐 큰 용기가 필요하다. 때문에 코액터스는 최근 서울맞춤훈련센터,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5주 과정의 ‘청각장애인 택시기사 취업 과정’을 만들었다. 현재 8명이 맞춤 교육을 받고 있다. 송 대표는 “고요한 택시 기사님들은 정말 한 분 한 분, 다른 이들이 가지 않던 길을 가시는 분들”이라며 “혹시 길에서 이들을 만나게 되신다면 많은 용기와 응원 부탁 드린다”고 강조했다.

/강신우기자 se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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