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변은 없었다. 7일 진행된 아시아나항공(020560)의 매각을 위한 본입찰에 깜짝 쇼는 없었다. 막판까지 깜짝 등장 가능성이 거론됐던 SK·GS·신세계그룹 등 대기업도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한항공과 함께 지난 31년 동안 국내 항공산업을 이끌어온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항공업 퇴장을 눈앞에 두면서 국내 관련 산업도 본격적인 재편 움직임이 일 것으로 보인다.
◇자금력이냐 항공업 경험이냐=본입찰에는 HDC현산·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과 애경·스톤브릿지 컨소시엄, KCGI·뱅커스트릿 컨소시엄 등 기존 적격 예비인수후보(쇼트리스트) 후보들이 모두 참여했다. KCGI 컨소시엄은 대형 전략적투자자(SI)를 섭외하는 데 실패해 사실상 경쟁 구도에서 탈락했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동안 매각을 진두지휘한 산업은행과 국토교통부는 재무적투자자(FI) 조합에는 국적항공사를 팔기 어렵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바 있다. KCGI는 신세계 등 인수 의사를 보였던 국내 대기업을 대부분 접촉했지만 결국 파트너를 구하는 데 실패했다. 이에 따라 자금력에서 우위를 가진 HDC현산 컨소시엄과 항공업 경험에서 강점을 지닌 애경 컨소시엄이 막판까지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나의 취약한 재무구조만 보면 HDC현산 측이 우위를 점했다고 볼 수 있다. 상반기 기준 HDC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과 단기금융상품 등은 1조6,000억원에 달한다. 1조5,000억원 안팎이 거론되는 매각 자금을 감당할 수 있는 자산이다. 여기에 파트너로 나선 미래에셋 역시 대출 형식의 인수금융이 아닌 자기자본(PI) 투자로 아시아나 지분을 최대 20%까지 확보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A등급 신용도를 가진 HDC가 5,000억원 내외의 회사채를 발행해 자금 조달에 나설 경우 단기 자금 부담은 더욱 낮아진다. 아시아나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아시아나 인수기업은 회사를 인수한 뒤에도 새로운 기체 도입, 유지보수 등에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할 수 있도록 재무구조가 튼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애경 컨소시엄은 항공업 분야의 경험을 내세운다. 특히 이번 인수전은 더 높은 가격을 써내는 쪽이 최종 승자가 되는 구조가 아니라 국토부 등의 정성평가도 거쳐야 한다. 산은과 국토부는 경영 능력과 향후 발전 계획 등도 모두 살펴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이 같은 정성적 요인을 감안하면 애경 측으로 분위기가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애경은 이날 별도의 자료를 통해 “지난 20년 동안 세계 항공업 주요 인수합병(M&A)이 모두 항공사 간 M&A였다”며 “애경이 아시아나를 인수할 경우 2028년 매출액을 8조원까지 높이고 영업이익률도 지금보다 10%포인트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호반건설 ‘악몽’ 재연될 수도=반면 아시아나 인수전은 우협이 선정된 후부터가 ‘진짜’라는 신중한 분석도 나온다. 우협 대상자가 상세 실사에 돌입한 후 예상치 못한 우발 채무가 발견돼 매각이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호반건설은 지난해 2월 산은이 내놓은 대우건설의 우협으로 선정됐다가 해외 부실사업을 이유로 9일 만에 인수를 포기했다.
이번 인수전에서도 입찰 후보자들은 매각주관사인 크레디트스위스(CS)로부터 충분한 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터트려왔다. 특히 기내식 분쟁과 관련한 계약에 대해서는 아예 자료를 전달받지 못해 ‘깜깜이 실사’가 진행됐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투자은행(IB)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산은 측이 신주발행 유상증자에 최소 8,000억원을 투입하라고 의무화했는데 회사 정상화에는 추가로 7,000억~8,000억원을 더 집어넣어야 할 것으로 추산한다”며 “자금 부담이 더 커질 경우 인수를 포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올 상반기 기준 아시아나의 부채총액은 약 9조6,000억원 수준에 달하고 있으며 여기에 장부에 포함되지 않은 우발채무를 포함할 경우 부채 규모가 10조원을 넘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경우 아시아나 매각 작업이 해를 넘겨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인수전에 참여한 한 사모펀드(PEF) 운용사 관계자는 “인수전이 진행되는 가운데 항공업 업황이 크게 악화했고 여러 악재도 부각됐다”며 “상당수 후보자들이 여전히 자회사 분리매각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매각이 끝내 불발될 경우 산은이 에어부산 등 자회사 매각으로 방향을 틀어 부실을 정리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는 이유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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