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위원회 출범때만 '반짝회의'...대부분 개점휴업·서면 대체

[유명무실 위원회 공화국의 민낯]

원자력진흥委, 탈원전으로 文정부 들어 사실상 올스톱

국가초고성능컴퓨팅委도 작년 서면 2회·올핸 안열려

비효율적 운영으로 시간·노력 낭비...구조조정 해야





“비서관으로부터 주간 일정보고를 받은 자리에서야 내가 이 위원회의 위원장인지 알았습니다.”

한 전직 경제부처 차관급 관료는 당시 자신이 위원으로 포함된 위원회가 몇 개나 있는지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필요 시 발족한 뒤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위원회가 부지기수일 정도로 관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위원회는 정책자문기구 성격으로 꾸려지는데 장차관이 바뀌면 이를 활용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면서도 정부 부처 장차관들이 주요 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으로 포함돼 있어 정부 정책을 밀어붙이기 위한 ‘요식행위’가 되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갑(왼쪽)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목희(〃 두번째)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9일 서울 금천구 메이커스페이스G캠프에서 열린 ‘제13차 일자리위원회 회의’에 참여해 의견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장차관들 겹치기 위원회 위원

26일 서울경제가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정부의 정책방향에 따라 만들어진 뒤 이름만 남겨진 위원회의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각 부처 장차관들은 상당수가 개별 위원회의 구성원으로 있으나 민감한 현안이 아니고서는 통상적으로 참석하는 경우가 드물다. 위원회가 실질적인 심의의결 권한을 갖지 않는다면 실효성 있게 운영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일례로 국가초고성능컴퓨팅 관련 예산의 확대 방안을 심의하고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국가초고성능컴퓨팅위원회는 지난해 서면으로만 두 번 열렸고 올해는 한 번도 개최되지 않았다. 이 위원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자문위원회 성격을 갖고 있으며 과기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기획재정부 등 10개 부처 차관이 당연직 위원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위원회도 구성이 비슷하다. 과기부 장관이 위원장이며 8개 부처 차관이 위원이다. 지난 2017년 서면회의 한 번, 2018년 서면회의 두 번에 이어 올해도 서면회의만 한 번 열렸다. 국무총리를 당연직 위원장으로 하는 정보통신전략위원회는 11명의 장관이 당연직 위원이다. 이들은 2016년 이후 회의 석상에서 만난 적이 없다. 기재부의 민간투자사업심의위원회는 올해 세 번(서면 한 번 포함) 열렸으나 위원장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참석한 적이 없고 구윤철 기재부 2차관이 대행했다. 익명의 정부 관계자는 “바쁜 장차관들이 현실적으로 참여하기가 힘들어 시급하지 않으면 서면으로 대체하거나 위원회 본회의를 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드 위원, 들러리 지적도





정부가 민간위원들로 구성된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놓고 ‘거수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강하다. 이미 결론을 내린 뒤 위원회를 들러리로 내세워 책임행정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위원회에 참석했던 민간 전문가들은 회의에서 현안을 놓고 심도 있는 논의를 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재부 소관 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경제단체 고위관계자는 “아직 문제를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했는데 정부 쪽에서 다음주까지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며 위원들을 다그쳤다”며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하면 ‘일단 이번 회의에서 결론을 내고 문제점은 다음에 논의하자’는 식으로 나온다”고 토로했다. 익명의 전직 정부 고위관료는 “이슈가 있을 때 민간의 의견을 듣는 형식으로 행정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사용된다”며 “포장을 위한 메커니즘”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위촉권을 쥐고 제 입맛에 맞는 위원을 임명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굵직한 부동산정책을 심의하는 국토교통부 산하 주거정책심의위원회의 경우 위원 24명 중 11명이 교수 등 민간위원으로 구성되지만 장관이 위촉권을 갖고 있다. 심의 과정에서 정부 입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부처 위원회 명단을 보면 관련 전문가로 보기 어려운 인사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며 “전문가는 사라지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비전문가들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위원회 성과 관리하고 정비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위원회 참석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부처 내부에서 이미 회의를 통해 방향을 정해놓는 경우가 적잖다”며 “참석해도 논의 방향에 영향을 주기 어려우니 위원으로 초청을 받아도 참석을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위원회 통폐합과 정비는 매 정부에서 나오는 구조적인 문제다. 법안에 근거해 만들어지다 보니 없애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국무총리실 등이 중심으로 나서 유명무실해진 곳은 폐지하고 중복되는 곳은 통폐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위원은 “얼마나 심도 있게 논의가 이뤄졌는지 평가해 거수기 수준으로 전락한 수준 미달의 위원회는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황정원·김우보기자 garde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