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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U 공룡 인텔의 '제조 딜레마'...파운드리 손잡고 분업화할까

[이상훈의 재미있는 반도체이야기-CPU 공급차질 후폭풍]

반도체산업 특징은 설계·제조 분업

공정 미세·첨단화로 투자 부담 늘자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 이어

다양한 제품 제작 '파운드리'도 탄생

인텔, 최근 수요 늘며 수율관리 난항

경쟁자였던 AMD도 생산 라인 접어

'CPU 제국' 결정따라 시장 요동칠듯







최근 반도체 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 공급부족 사태 장기화다. 미국 정보기술(IT) 매체 아난드테크에는 인텔이 PC·서버 업체 등에 보냈다는 사과문이 원문 그대로 실려 있다. 여기에는 CPU 공급부족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고백이 담겼다. 대만 디지타임스도 CPU 부족 사태가 최악의 경우 내년 2·4분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인텔은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데이터 분석 수요 폭증에 따른 14나노 CPU에 대한 수요급증을 꼽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의구심은 가라앉지 않는 상태다. 인텔이 주력인 14나노 CPU의 수율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10나노 제품으로 공정 전환도 더뎌지면서 공급부족 사태가 길어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그래서 인텔이 공정 미세화와 공정 전환에 따른 CPU 수율 관리에 실패하면 결국 CPU 설계만 하고 제작은 삼성전자 등 파운드리에 맡기는 날이 오는 게 아니냐는 진단이 나올 만하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반도체 산업의 특성에 대해 살펴보자. 반도체의 가장 큰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설계와 제조의 분업화다. 설계만 하는 기업은 ‘팹리스’, 제작만 하는 기업은 ‘파운드리’로 부른다. 그런데 설계와 제작을 다 하는 인텔과 삼성전자는 종합반도체(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IDM)라고 한다. 삼성만 해도 압도적인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다른 업체를 눌러왔다. 이를 위해 대당 1,500억원을 호가하는 ASML의 첨단 극자외선(EUV) 노광기를 들여오고 한 개의 생산라인을 까는 데만 수조원이 들어감에도 규모의 경제를 위해 공장을 계속 크게 짓고 있다. 웨이퍼에 작은 칩을 만들기 위한 설계에도 힘써야 한다. 한마디로 극한의 원가 절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텔도 비슷한 입장이다. 폐쇄적인 설계 시스템과 제작 능력으로 ‘CPU 제국’을 만들어온 게 인텔이다. 하지만 추격자 AMD가 파운드리 TSMC의 힘을 빌려 7나노 공정을 적용한 CPU를 지난 8월 시장에 성공적으로 선보이면서 흔들리고 있다. AMD의 반격으로 인텔도 종합반도체로서 위상을 재고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점점 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반도체 시장 초기만 해도 많은 회사가 IDM이었다. 자본 투자가 그렇게 크지 않았던 때라 상당수 기업이 팹을 자체 보유했다.



문제는 미세화 공정으로 넘어가면서다. 공정이 복잡해지고 미세화되면서 투자 규모는 커지는데 주력 사업에서는 이를 감당할 만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이 발생했다. 이는 제조를 포기하고 반도체 설계자산(IP)과 설계 능력을 갖춘 사람만 남기는 ‘디자인하우스’ 팹리스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이 지난 10월 독일에서 열린 ‘삼성 파운드리 포럼 2019 뮌헨’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인텔이 CPU 수율 관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파운드리와의 협업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인텔의 경쟁자 AMD도 과거에는 어엿한 IDM이었다. 하지만 제조의 높은 벽에 막혀 생산라인을 털게 된다. 파운드리 세계 3위인 글로벌파운드리는 AMD의 생산라인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국부펀드 간 합작으로 2008년 AMD에서 분사해 설립된 기업이다. AMD가 몸집이 가벼운 팹리스 기업으로 전환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면 앞으로 인텔이 파운드리에 CPU 제조를 맡긴다면 AMD 물량을 만드는 TSMC를 피해 삼성과 손잡을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인텔의 결정에 따라 파운드리 시장이 요동칠 수 있다.

설계만 하는 팹리스가 생겼으니 제조만 하는 파운드리도 필요했다. 반도체가 설계와 제조의 분업화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첨단 공정의 과실을 계속 누리면서도 자사 설비만으로는 가동률을 높일 수 없는 기업의 딜레마에 따른 것이다. 이런 분업화 덕분에 팹리스들은 투자의 짐을 벗고 빠르게 변화하는 IT 산업에 맞춰 유연하게 자신이 원하는 반도체를 설계할 수 있다.

파운드리의 장점은 분명하다. 설계와 제조의 분업화 전만 해도 칩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차기 공정에 뛰어들어야 했고, 이는 과거 설비를 처분해야 함을 의미했다. 하지만 전문 파운드리 업체 입장에서 보면 고객은 많을수록 좋다. AMD·구글·엔비디아·애플 등을 위해서는 7나노 등 최첨단 공정을 통해 칩을 만들어주고 대부분의 영세 팹리스를 위해서는 기존 제조공정을 재활용해 안정적 수율로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 전문 파운드리로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고객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2018년 기준 반도체 매출을 보면 삼성전자·인텔·SK하이닉스·TSMC·마이크론 순이다. TSMC를 빼면 모두 IDM이다. 팹리스 1등과 2등인 브로드컴과 퀄컴은 전체 순위에서 6등과 7등에 그쳤다. 왜 인텔이 CPU를 파운드리에 넘긴다는 뉴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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