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두유바이크는 회사에서 어찌저찌 떠밀려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이크가 제 평생 취미로 굳어졌고, 연재하다 보니 나름 보람차서 저희 서울경제신문의 최장 기간 연재 중인 온라인 콘텐츠라는 기록(검증 안됐음)을 세우고 있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두유바이크 열성독자란…어딘가 실존해 계신 거겠죠? 가장 냉철할 때인 점심시간 직전에 조금 의심하긴 했지만 결국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평소의 지론대로 어딘가 존재할 것이란 결론을 내려 보았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그냥 본인 좋을 대로 생각하면서 인생 편히 사시길 바랍니다, 화이팅!!!
어쨌든 100회를 맞아 뭔가 이벤트라도 해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마침 지난 8월에 바이크 입문 이래 첫 사고를 겪었습니다. 사고는 남의 이야기인 줄로 알고 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말 내 이야기가 돼 버리니 어리둥절하더군요. 이 참에 100회 특집으로 두유바이크 안전 라이딩 캠페인이라도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사고 썰 풀어보겠습니다. 때는 지난 8월 초의 어느 더운 주말 아침이었습니다. 사진기자 바이크 동호회인 모토포토 회원들과 양만장에서 만나 속초에서 돌솥밥을 먹고 돌아오는 훌륭한 투어가 예정돼 있었죠. 날은 더워 죽을 맛이었지만 저는 돌솥밥 러버이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마침 모토포토에서 바이크 광인이자 미케닉이자 IT 전문가까지 담당하고 있는 회원 류 모 씨가 360도 촬영 기능을 갖춘 기기를 챙겨와서 이런저런 기념사진도 찍고 분위기가 참 화기애애했죠.
그리고 기운차게 출발해 첫 와인딩 코스인 배후령을 지났습니다. 류 모 회원이 찍어준 배후령에서의 이 사진은 제 390 듀크의 마지막 멀쩡한 모습이었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지 삼사십분 후 사고가 났고, 두 달 가까이 지나 수리가 끝났죠.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배후령에서 신나게 달리고 싶어서 제가 먼저 속도를 냈습니다. 속도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류 모 회원은 이날 새 기기로 촬영하느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구요. 그래서 배후령을 혼자 넘어서 첫 번째 휴식 장소로 가는데 마침 길을 잘못 든 겁니다. 근데 아주 대차게 잘못 들어서 휴식 장소까지 돌아가는 데 내비로 40분이 찍히더군요. 당황한 저는 나ㅅㄲ 바보!!!!!를 외치며 일단 보이는 길로 빠져나갔고, 다시 내비를 보며 갈 길을 찾던 중 두 갈래 길 사이의 충격완충용 구조물을 들이받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잘 몰랐습니다. 내비에 한눈을 팔다 무언가에 부딪혔고, 오른쪽 무릎에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죠. 그래도 아주 빠른 속도는 아니었던 덕에 조금 휘청였을 뿐 넘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아프니까 일단 바이크를 세워봅니다. 세워봤더니, 제 듀크는 원래와는 상당히 다른 모양새가 돼 있었습니다. 일단 엔진탱크 오른쪽의 주황색 커버가 뜯겨나갔고, 그 밑에 숨겨져 있던 냉각수 통까지 찢겼는지 초록색 냉각수가 사방에 흘리고 튀어 정말 괴랄한(…) 상태였습니다.
무릎의 아픔이 가시고 좀더 자세히 살펴보니 한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라디에이터 일부도 뜯겨나갔고, 프론트 펜더에 서스펜션, 머플러까지 상처가 무지막지했습니다.
이쯤 되자 제가 다치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릎이 좀 아프긴 했지만 바로 부어오르거나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급히 일행들에게 연락하고, 서울까지 저와 바이크를 싣고 갈 용달차를 수배합니다. 용달차를 부를 일이 생길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지만 얼른 인터넷으로 검색해봅니다. 처음 연결이 된 기사님은 서울까지 거의 30만원을 부르셨고 심지어 제가 기다리는 춘천 신북읍까지 한시간 반 정도 걸린다 했습니다. 그래도 기다리려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더 가까운 곳에 계신 기사님을 찾아보니 다행히 30분 내에 도착, 비용은 15만원이라 하십니다. 먼젓번 통화한 기사님께 다시 연락해 양해를 구했더니 흔쾌히 알겠다 하십니다. 왜냐면, 그늘 하나 없는 도로에서 삼십분 넘게 서 있기엔 끔찍하게 더운 날씨였거든요. 그날 춘천의 최고기온은 36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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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원들에게는 제발 걱정 말고 가던 길 가시라고 했는데, 용달차도 불렀으니 괜찮다 했는데 굳이 또 옵니다. 하필 제가 잘못 들어간 길이 자동차전용도로(…)여서 그 더운 길을 땀흘리며 걸어 옵니다. 심지어 마실 것도 들고 옵니다. 너무너무 죄송스러운데 한 회원이 “혼자 길바닥에 버려두는 건 라이더로서 안될 일”이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제가 조금만 덜 드라이한 성격이었으면 울어버렸을 겁니다. 두고두고 고마울 것 같습니다.
기사님은 금방 와주셨습니다. 능숙하게 바이크를 올려 고정시킨 뒤,
드디어 서울로 향합니다. 최대한 짧게 적고 있지만 사실 사고 직후부터 서울에 닿을 때까지 오만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당연히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으로 놀랐고, 다음에는 무릎과 수리비가 걱정됐으며, 그리고는 온갖 반성과 회한(?!)과 허탈함이 몰아쳤습니다. 그동안 안전하게 타자, 이렇게 타야 안전하다, 바이크 위험하지 않다, 고 수백 번은 떠든 제가 사고가 나 버렸으니까요. 게다가 이번 사고의 원인은 전적으로 부주의입니다. 마음 속으로 제 자신을 매우 쳤습니다.
곧 핸드폰이 폭발해버릴 것 같은 도로 위에 있다가 시원한 차에 올라타니 점점 마음이 편해지긴 했습니다. 이미 난 사고, 곱씹어봐야 저만 더 스트레스 받구요. 다행히 기사님도 좋은 분이셨습니다. 같이 기다려줬던 동호회원 한 분은 사고 후 서울 도착할 때까지 기사님이 “바이크는 위험한데 왜 타냐”고 백만 번 말씀하시는 바람에 너무나 힘들었다고 했는데, 저를 태우고 가신 기사님은 사고에 대해선 단 한 마디도 않으셨습니다. 그저 서울에서 살다 춘천으로 가게 된 얘기, 가족 이야기 등 소소한 대화를 나눴을 뿐입니다. 참 고마워서 도착지에서 몇 만원 더 얹어드렸습니다.
이날부로 저는 내비는 음성안내만 듣기로 스스로와 약속했고, 방심할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꾸준히 되새기기로 했습니다. 서울에 도착해 바이크 수리를 맡기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다행히 무릎은 멀쩡했습니다. 390듀크의 수리에 그로부터 두 달 정도 걸리긴 했지만 저에게는 W800도, 울프도 있으니까요. 바이크 여러 대를 가진 보람이 극대화됐던 두 달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수리비는, 최소 200만원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는데 150만원으로 끝났습니다. 수리비가 더 비싼 고가의 바이크로 사고가 났었다면 정말 울고 싶었을 것 같습니다. 감쪽같이 원상복구해 주신 KTM 직원분들께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이렇게 제 사고썰을 구구절절 푼 이유는, 독자 여러분들도 초심을 되새기시길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평소 무리하지 않게 탄다고 생각한, 정기적으로 사고 영상을 찾아보며 경각심을 버리지 않았던 저도 사고를 내고야 말았습니다. 남의 일이었던 사고가 얼마든지 내 일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저는 운 좋게 바이크만 다치고 끝났지만, 어디 다치기라도 했다면 제 삶이 한 순간에 달라졌겠죠.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평소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으시고 많이 대비하시겠지만, 분명 부주의해지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절대 마음 놓지 말고 열심히 조심하시길 또 한번 당부드려 봅니다. 한국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이륜차 1만대당 사고 건수는 68.1건으로 자동차 1만대당 사고 건수(80.36건)보다 적었지만, 사망자 수는 이륜차가 1.9명으로 자동차(1.4명)보다 많았습니다. 한 순간에 인생이 없어질 수도 있는 겁니다.
저도, 독자 여러분들도 조심조심 오래오래 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여기까지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드리며, 다음 번 두유바이크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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