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규제에 따른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의 기술독립을 위한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본격 시작됐다.
9일 중소벤처기업부는 반도체 제조용 에어베어링 스핀을 국산화한 알피에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증착용 금속마스크를 만드는 풍원정밀 등 소부장 분야 강소기업 55개사를 선정해 앞으로 5년간 연구개발(R&D) 등에 회사당 최대 182억원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중기부는 소부장 분야 ‘강소기업 100’ 프로젝트를 통해 올해 100개사를 뽑을 예정이었지만 기준 등을 통과한 55개사만 우선 선정했다. 선정된 기업의 면면을 보면 △부품 22개사 △소재 17개사 △장비 16개사 등이다. 업종별로는 전기·전자가 16개사로 가장 많고 △반도체(10개사) △디스플레이·기계(각각 8개사) △자동차(7개사)가 그 뒤를 이었다. 특히 연 매출 300억원(2017년 기준) 이하인 중소기업이 전체의 47.3%(26개)를 차지한 데서 보듯 실적 등 외형보다는 기술 잠재력에 무게를 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소기업 선정은 지난 7월 일본의 수출규제로 야기됐던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의 생산차질 우려 등을 계기로 글로벌 서플라이체인에서 핵심 역할을 맡을 소부장 분야 국내 기업 육성이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뤄졌다. 강소기업 100은 중기부가 추진 중인 소부장 기업 육성 로드맵인 ‘스타트업 100, 강소기업 100, 특화선도기업 100’ 중 첫 번째 시행 프로젝트다. 중기부는 “이번에 1,064개사 중 55개사를 뽑은 데 이어 남은 45개사는 내년에 추가 공모를 통해 선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소기업 55곳… 이들 중 삼성전자도 울고 갈 제2의 ‘ASML’ 나온다
지난 2005년 설립된 알피에스는 국내 최초로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첨단산업 분야에 쓰이는 ‘에어베어링 스핀들’ 양산에 성공했다. 지난해 회사 매출액은 127억원, 직원은 55명으로 규모는 작지만 일본 업체들이 70%를 장악하고 있는 전 세계 반도체 제조용 에어베어링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 한 우물을 파고 있다.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지만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기술독립을 위해 알피에스와 같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 강소기업 55개사를 선정해 집중 지원하기로 했다. 선정 소식을 들은 이동헌 알피에스 대표는 “세계 두 번째로 ‘툴홀더형 에어베어링 스핀들’도 개발했다”며 “에어베어링 스핀들 분야에서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회사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9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소부장 강소기업 100 프로젝트’에는 알피에스를 포함해 아이티켐·풍원정밀·부국산업 등 55곳이 포함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기술독립 필요성이 고조되면서 소부장 분야 전문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의 첫 로드맵이다. 중기부는 ‘스타트업 100, 강소기업 100, 특화선도기업 100 프로젝트’ 가운데 첫 번째로 소부장 강소기업 100개 중 우선 55개 기업을 선정하고 내년에 나머지 45개 기업을 선정할 계획이다. 김영태 중기부 기술혁신정책관은 “기술혁신성뿐 아니라 시장성, 사업화 성공 가능성을 고려해 선정된 기업들”이라며 “현재의 수치(매출 등)보다 성장 가능성에 방점을 찍었다”고 말했다.
1996년 설립된 풍원정밀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쓰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증착용 ‘파인메탈마스크’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제품은 종이보다 얇은 합금, 수천만개의 미세한 구멍 등 제작 기술의 난도가 높다. 현재 일본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분야기도 하다. 유명훈 풍원정밀 대표는 “국내 기업이 파인메탈마스크에 대한 일본 의존도를 낮춰 안정적인 공급, 원가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게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 선정된 기업들은 소부장 분야 국산화를 이뤄낼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55개 기업은 앞으로 5년간 기술개발부터 사업화 단계, 연구인력, 수출, 마케팅 등 전 분야에 걸쳐 최대 182억원씩 지원받을 수 있다. 일반 정책금융 지원이나 전용 연구개발사업 등을 감안하면 기업당 평균 100억원 이상 지원받을 수 있다. 또 선정기업은 매년 1,000억원씩 3년간 3,000억원 규모로 조성되는 소재·부품·장비 전용 펀드에서도 투자를 받을 수 있다.
업종도 다양하다. 55개 선정기업의 업종을 보면 부품 22개(40%), 소재 17개(31%), 장비 16개(29%) 순이다. 기술 분야별로는 전기·전자가 16개(29.1%)로 가장 많고 반도체 10개(18.2%), 기계금속·디스플레이 각 8개(각 14.5%), 자동차 7개(12.7%), 기초화학 6개(10.9%)다. 평균 기술개발 인적자원은 14.7명으로 중소제조업(3.3명) 대비 4.5배 높았다. 평균 특허권은 42개로 7.9배(중소제조업 5.3개),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R&D 집약도)가 6.1%로 3.8배(중소제조업 1.6%) 뛰어났다. 정부가 소부장 강소기업을 집중 육성하려는 데는 반도체 핵심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과 같은 글로벌 기술력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ASML 노광장비는 반도체 업체의 사활을 쥐고 있을 만큼 핵심 중의 핵심으로 통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크지 않은 주요 이유로 네덜란드 ASML이 차세대 장비를 중국에 납품하지 않는 것이 꼽힐 정도로 ASML의 장비는 전 세계적으로 핵심 부품 중 하나”라며 “그만큼 앞으로는 핵심부품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로 국가경쟁력이 좌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 같은 이유로 상장기업보다는 묵묵히 핵심기술을 개발해온 비상장 기업에 더 많은 점수를 줬다. 나중에 기업공개(IPO)를 통해 더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도 마련됐다. 실제 55개 기업 가운데 비상장 기업이 38개로 상장기업(17개) 보다 두 배 이상 많다. 게다가 매출 300억원 이하의 중소기업이 47%(26개)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더구나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기업 등이 강력 추천한 강소기업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판로 등의 선순환도 기대되고 있다. /이상훈·양종곤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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