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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無노조 원칙' 사실상 접었다

노사관계 쇄신 입장문 발표

'노조 와해 혐의' 경영진 구속에

"국민 눈높이 맞게 노사문화 정립"

삼성전자(005930)가 ‘무(無)노조 정책’을 사실상 폐기한다. 80년간 이어온 삼성의 무노조 원칙이 잇따른 ‘사법 리스크’에 강도 높은 쇄신카드로 이어진 셈이다. ★관련기사 12면

삼성전자와 삼성물산(028260)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혐의로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등이 유죄 판결을 받은 것과 관련해 18일 입장자료에서 “노사 문제로 많은 분들께 걱정과 실망을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뒤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고개를 숙였다. 삼성 측이 대법원 확정선고가 나지 않은 사안과 관련해 사과 등을 담은 공식 입장문을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을 비롯한 최고 경영진이 잇따라 구속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삼성전자가 확실하면서도 발 빠른 대응을 보여준 것이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또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 정립’이라는 표현을 사실상 ‘무노조 정책’ 파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노조가 설립된 삼성 그룹사는 삼성전자·삼성SDI·삼성생명·삼성증권·에버랜드·에스원 등이지만 규모가 크지 않다. 이번 선언으로 삼성 내부에서도 노조 설립 움직임이 보다 활발해질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가파른 성장에 기반한 높은 성과급 지급 및 복지 혜택 등으로 내부 직원들이 노조 설립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지 못하는 정책을 펼쳐왔다”며 “삼성 입장에서는 사회적 눈높이에 맞춘 대책을 내놓은 셈이지만 여타 기업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노조 리스크’가 두고두고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입니다.”(11월1일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 창립 50주년 영상 메시지)

“앞으로는 임직원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를 정립해 나가겠습니다.”(12월18일 삼성전자·물산의 법원 판결 관련 입장문)

삼성전자가 ‘공동성장’과 ‘나눔’에 기반한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기업문화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1일 삼성전자 창립 50주년 행사에서 ‘상생경영’을 선언한 데 이어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18일 입장문을 통해 ‘건강한 노사문화 정립’ 의지를 강조하는 등 상생과 동행을 화두로 경영목표에 변화를 주고 있다. 특히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 법정구속에 따른 대외 이미지 하락과 최순실 국정농단 재판과 관련한 경영 불확실성 확대에 대응해 준법 경영에도 한층 힘을 준다는 계획이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사장들은 최근 준법경영 체제 강화 방안 마련에 머리를 맞댄 것으로 전해졌다. 각사별로 진행되던 준법경영 활동을 그룹사 전체를 총괄하는 형태로 전환해 보다 체계적이고 확실한 준법경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서울지법 판사 출신인 김영수 전무를 팀장으로 한 컴플라이언스 팀을 운영하며 준법 경영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처음 만들어진 컴플라이언스팀에는 상무 2명 등 53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올 초부터 지난 3·4분기까지 총 17차례 점검활동을 벌였다. 주요 계열사들도 준법경영관련 인력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생명이 37명, 삼성화재 35명, 삼성SDI 21명 등이다.

삼성전자의 준법경영 성과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컴플라이언스 교육을 받은 임직원은 21만4,450명이며 윤리경영 위반사례 제보 건수는 전년(608건)의 절반 수준인 375건에 그치기도 했다. 아울러 이 부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상생·동반경영에도 한층 힘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삼성전자는 10여년 동안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던 반도체 사업장 백혈병 발병 문제에 대해 지난해 11월 사과문을 게시하고 지원보상안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당시 삼성전자는 “과거 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 건강유해인자에 의한 위험에 대해 충분하고 완벽하게 관리하지 못했다”며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직원들과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이번 일을 계기로 삼성전자는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이 피해자 앞에서 준비된 사과문을 낭독하는 방식으로 공식 사과하며 ‘삼성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협력사와의 동반성장에도 힘을 쏟고 있다. 삼성전자가 협력사에 구매비용으로 지급한 금액은 2016년 127조원에서 지난해 156조원으로 껑충 뛰었으며 기부금 등으로 지출한 나눔경영 비용도 지난해 4,096억원에 달한다. 이 같은 삼성의 상생경영 기조 확대는 ‘지속가능한 기업모델 구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 같은 삼성전자의 급속한 변화에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주력 부문인 반도체 산업은 중국과 대만의 추격이 거세지는데다 스마트폰·가전 부문 또한 영업이익률이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보다 ‘배분’이 아닌 ‘성장’에 채찍질을 가해야 하는 시점이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삼성이 이날 언급한 ‘미래지향적이고 건강한 노사문화 정립’이 사실상 삼성의 ‘무노조 경영 폐기’라는 해석이 많아 삼성 또한 노조 리스크에 시달릴 수 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시장에서는 애플·구글·인텔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기업이지만 한국에서만큼은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선두그룹에서 탈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여전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룹 총수인 이 부회장이 ‘상생경영’을 강조하는 만큼 삼성 그룹의 문화 상생을 중심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며 “다만 경영진 입장에서는 이 같은 상생경영 기조하에서 ‘초격차’ 전략 등 성장 동력을 꾸준히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머리가 아플 것”이라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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