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기업 이사 해임을 포함한 강력한 주주권 행사 방침을 확정하면서 국내 기업 상당수가 국민연금의 영향권에 놓일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물론 시민단체·노조 등이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을 상대로 사실상 경영간섭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에서 주식 의결권을 보유한 국내 상장사 716곳을 조사한 결과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가진 기업은 273곳(38.1%)에 달했다. 자본시장법은 경영권 개입이 가능한 주식 보유 비중을 5%로 보고 있으며, 상법상 임시 주주총회 소집이 가능한 지분율 기준은 3%로 이보다 낮다. 즉 국내 상장사 10곳 중 4곳은 국민연금이 언제든 경영에 개입할 수 있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도 19곳에 달했고 △2대 주주 150곳 △3대 주주 59곳 △4대 주주 24곳 △5대 주주 14곳 순이었다. 이를 합산하면 분석기업 716곳 중 37.2%에 해당하는 266개사에서 국민연금이 5대 주주 이상의 지위에 올라 있는 셈이다.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이 자국 주식에 이처럼 광범위하게 투자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다는 게 한경연의 지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공적 연기금이 국내주식에 투자하는 국가는 14곳이었으며 이나마도 공적연금이 최대주주인 사례는 뉴질랜드 1건, 덴마크 6건에 그쳤다. 19개 기업에서 최대주주 자리를 점한 국민연금과 비교하면 훨씬 낮은 수치다. 다만 핀란드와 네덜란드의 경우는 공적연금이 아닌 기금 운용을 대행하는 민간보험사나 기관이 일부 기업의 최대주주로 있어 국민연금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번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 의결로 대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영향력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경우 국민연금 지분율이 10.49%(9월 말 기준)에 달해 단일 최대주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10.05%), SK(8.28%), LG(6.56%) 등에서도 최대주주와 비슷한 수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가 상법과 자본시장법을 모두 개정해 주주권 행사의 문턱을 낮추려 하는 것도 기업들에는 부담이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5% 공시의무를 완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고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 후보자의 개인정보 공개를 확대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국민연금의 기업경영 개입과 지배구조 간섭이 늘면 신산업 진출과 일자리 창출에 매진해야 할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일범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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