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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S] 인증땐 국산, 생산땐 중국산…구멍 뚫린 '품질인증 시스템'

신축아파트 '자동역류방지 댐퍼'

전수조사땐 대다수 중국산일 듯

감리회사는 부품까지 안뜯어봐





지난해 입주한 전주시 평화동의 한 아파트. 주방의 가스레인지 후드는 ‘자동역류방지 댐퍼(damper)’가 장착된 최신 제품으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H사가 제조한 것이다. 하지만 제품을 분해해본 결과 핵심부품인 모터는 중국산을 사용한 이른바 짝퉁이었다. H사가 국산 모터를 장착해 한국설비기술협회(KARSE)의 단체표준 인증을 받은 후 생산과정에서는 품질이 낮은 중국산 저가 모터를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자동역류방지 댐퍼는 환풍기나 가스레인지를 가동하면 배기구를 열고 작동을 중단하면 배기구를 닫아 외부 냄새와 미세먼지 유입을 막는 장치다. 저가 중국산 모터를 사용하면 잦은 불량과 고장의 원인이 된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국 신축 아파트의 대부분은 중국에서 수입한 저가·저품질 부품을 장착한 자동역류방지 댐퍼가 설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5년 3월 시행규칙을 개정한 후 ‘단체(협회) 표준인증’ 제품 사용이 의무화됐지만 지키지 않고 있다. 올 한해 동안 전국에 공급된 아파트(재건축·재개발 제외)가 2015년 3월 이후 사업시행 인가를 받은 단지라고 가정하면 33만7,000여 가구에 달한다. 다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시공하는 아파트에는 단체인증을 받은 정상 제품이 사용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한 관계자는 “제조사가 관련 협회에서 ‘단체인증’까지 받은 뒤 시공 과정에서 중국산 저품질 모터가 장착된 제품을 사용했다면 사기이자 범법행위”라고 지적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감리회사들이 시공에 앞서 검수작업을 하지만 부품 속 모터까지 뜯어보지는 않기 때문에 작정하고 속이려 든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 차원의 전수조사가 이뤄질 경우 대다수가 가짜로 확인될 것”이라고 말했다. /탐사기획팀=김상용기자 kimi@sedaily.com

<정부 ‘표준인증’ 의무화했는데…제조사는 중국산으로 눈속임>

2,200원 더 남기려 저품질 사용

가격차는 작지만 성능차이는 커

제품불량에 애꿎은 소비자 피해

관세청은 中부품 현황 파악못해



가스레인지 후드와 욕실 환풍기 제조업체들이 한국설비기술협회(KARSE) 단체표준인증을 받은 뒤 중국산 저품질 모터를 장착해 건설사에 납품하는 것은 원가를 낮춰 마진폭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업체들이 중국산 저품질 부품으로 얻는 추가 이익은 개당 2,200원에 불과하다. 2,200원의 추가 이익을 보기 위해 제조업체들이 양심을 팔고 있는 것이다.

제품 불량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이 입고 있다. 자동역류장치 댐퍼를 생산하는 업체의 K모 대표는 최근 서울경제와 만나 “중국산 저품질 모터는 힘이 떨어져 욕실의 수분을 외부로 배출한 뒤 댐퍼에 남은 수분 때문에 얼어버린 상태로 고장이 날 수 있다”며 “주방 가스레인지 후드에 설치된 댐퍼 역시 기름이 낀다면 열린 상태로 모터가 고장이 나거나 닫힌 상태로 굳어 흡배기가 제대로 안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증기관도 ‘강제조항’ 잘 몰라=KARSE는 지난 2015년부터 자동역류장치 댐퍼 등에 대한 단체인증을 시작했다. 단체인증이란 국가인증이 아니라 협회나 단체가 공통의 기술과 성능 기준치를 정한 뒤 해당 기준을 통과하면 인증하는 제도다. 자동역류장치 댐퍼의 경우 국가인증제도가 없는 만큼 KARSE가 인증하는 단체인증이 유일하다. 실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욕실 환풍기와 가스레인지 후드 제조사 등은 모두 KARSE에서 자동역류방지 댐퍼에 관한 단체인증을 받았다. 하지만 업체들은 단체인증 이후 제품을 생산할 때 저품질의 중국산 저가 부품으로 바꿔 생산한 뒤 판매하고 있다.

특히 2015년부터 국토교통부의 ‘단체(협회)표준인증’ 제품 사용이 의무화됐지만 협회조차 제대로 모르고 있어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협회가 관련 인증 업무를 하고 있지만 반드시 인증 제품만을 아파트에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국토부의 건축 기계 설비공사 표준 시방서도 일종의 권고사항이라 인증제품을 설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토부는 2015년 3월 공포된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칙 개정령’의 ‘자동역류방지 댐퍼 장치 설치 조항(11조6호)’을 따라야 하고 여기에 ‘건축기계 설비공사 표준 시방서’도 준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토부가 고시한 건축기계 설비공사 표준 시방서는 덕트 설비공사 관련 사항으로 “모든 자재 및 기기는 KS 표시 인증제품으로 하되 없을 시에는 단체표준(인증) 제품을 사용해야 하고 인증품이 없을 시는 관련 KS표준 또는 단체표준을 참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동역류방지 댐퍼 신설 조항으로 2015년 3월 이후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아파트 단지는 반드시 욕실 환풍기와 가스레인지 후드에 KARSE 인증을 받은 제품만을 설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작은 가격 차이 불구 성능 차이는 커=KARSE의 인증 세부기준을 살펴보면 덕트를 통과하는 공기를 차단하는 데 필요한 전동 댐퍼는 완전히 닫힌 상태에서 누설 공기량이 일정 수준 이하여야 한다. 실제 서울경제가 부품 제조사를 직접 찾아 시험해본 결과 국내산 모터의 경우 손으로 힘껏 눌렀을 때 공기차단막이 눌러지지 않지만 중국산 모터를 사용한 제품은 가볍게 손으로도 댐퍼를 개폐할 수 있었다. 아파트 옥상을 통해 유입된 외부 바람이 집안의 댐퍼를 통해 그대로 유입될 수 있다. 자동역류방지 댐퍼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모터 제조사 관계자는 “국산 부품은 모터가 개당 4,000원 정도에 팔리고 이윤은 10%도 안 되는 수준”이라며 “한국에 수입된 중국산은 개당 1,800원 정도에 살 수 있어 환풍기 제조업체들이 중국산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결국 개당 2,200원의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저품질 제품을 양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들의 무지와 건설현장의 감리업체들이 제품의 모터까지 확인하지 않는 허점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모터(기어 포함) 부품 제조사들은 정부의 강제 설치 조항이 의무화된 후 가스레인지 후드 제조사 등이 오히려 고품질의 국산 부품보다 중국산 저품질·저가 제품 사용을 늘리면서 국산 부품의 판로까지 끊기고 있는 형편이다. 가스레인지 후드 제조사 관계자는 “정부에서 강제적으로 자동역류방지 댐퍼를 아파트에 의무 설치하라고 한 후 제조사들이 이른바 짝퉁 부품을 끼워 넣고 팔면서 오히려 국내 관련 부품 제조사 등의 경영이 더 어려워졌다”며 “기술력을 쌓고 정직하게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만 납품 단가를 맞추지 못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고 전했다.

◇관세청, 부품수입 통계 파악 못해=중국산 저가 모터들이 한국 시장을 잠식하는 사이 관세청은 해당 부품에 대한 수입 실적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역류방지 댐퍼의 핵심 부품인 댐퍼 모터의 대체품으로 수입되는 중국산 스테핑 모터는 국내에 들여올 때 상품의 종류를 숫자로 분류해놓은 HTS 코드가 없다. 관세청 관계자는 “HTS 코드는 세계관세기구가 정한 6자리의 제품 분류 코드에 각 국가가 정한 4자리 수를 더해 전체 10자리 숫자로 이뤄진다”며 “하지만 세계관세기구에도 스테핑 모터와 관련한 코드가 없어 얼마나 많은 중국산 저품질 모터가 한국에 유입됐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국토부의 강제 설치 의무화 이후 아파트 한 가구당 욕실 2개, 가스레인지 후드 등 최소 3개가 설치되는 만큼 연간 최소 100만개가량이 사용될 것으로 추정했다. /탐사기획팀=김상용기자 kim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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