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에인트호번을 중심으로 형성된 혁신단지 ‘브레인포트’. 글로벌 초격차 기업으로 불리는 반도체 기업 ASML과 NXP를 이을 또 다른 기업을 성장시키고 있다. 브레인포트가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선택한 것은 첨단 제조업 기반이다.
지난해 10월 문을 연 브레인포트인더스트리캠퍼스(BIC)는 ‘미래의 공장’으로 불린다. 이미 30여개의 업체가 입주해 클린룸·생산·물류시설 등을 공유하고 에인트호번공대 등 인근 연구소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고 있다. BIC는 화초에 영양분을 줘 성장 속도를 높이듯 입주기업에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루벤 포크마 국제사업개발 담당은 “반도체와 같은 산업의 성장 속도를 높이려면 파트너들과의 협업이 중요하다”며 “협력사들이 성장할수록 산업의 혁신도 빨라진다”고 지적했다. 브레인포트는 시장을 주도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부품 제조업체들의 성장을 꼽는다. 포크마 담당은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을 밸류 체인(value chain)으로 전환해 협력사들의 첨단 제조업 역량을 키우고 투자유치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브레인포트가 제조업 뿌리 강화에 힘을 쏟는 것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협력사와 대학 등 탄탄한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브레인포트의 중심 에인트호번은 1891년 필립스가 설립되며 빠르게 성장했다. 에인트호벤에서 필립스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이달 초 기자가 에인트호벤을 방문했을 때도 과거 필립스가 사용했던 사무실과 공장, 연구시설, 직원들이 거주했던 숙소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필립스의 경영 악화에 에인트호번도 위기를 맞았다. 이때 에인트호번은 시와 민간(필립스), 에인트호번공대(TUE) 등이 힘을 합쳐 체계적인 산업정책을 수립해 위기를 돌파했다. 시와 민간, 대학이 찾은 돌파구는 하이테크캠퍼스(HTC)다. 1963년 필립스가 연구개발(R&D)을 목적으로 설립한 HTC를 2003년 외부에 개방해 ‘열린 혁신(Open Innovation)’을 만들고 이듬해인 2004년 브레인포트를 탄생시켰다.
현재 브레인포트는 허브 공항으로 유명한 암스테르담의 스히폴공항(airport), 유럽에서 물동량이 가장 많은 로테르담(seaport)과 함께 네덜란드 경제를 이끄는 3대 포트로 불린다. 2017년 기준 브레인포트 지역 인구는 네덜란드 전체의 4% 수준이지만 특허 수는 네덜란드 전체의 42%나 차지할 정도다. 한때 유럽 최대의 전자업체로 명성이 높았던 필립스는 쇠퇴했지만 필립스가 오랜 기간 구축한 생태계와 이를 이어받은 HTC와 브레인포트 정책이 지금의 ASML·NXP와 같은 글로벌 초격차 기업을 탄생시켰다. /에인트호번=고병기기자 staytomorro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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