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 낙하산 공습경보가 울렸다. CEO를 새로 선임해야 하는 곳이 10곳을 넘는데다 임기가 지났는데도 후임자 선임이 안 돼 3년 이상 기존 CEO가 자리를 지키는 곳도 수두룩하다. 기관장 인사가 시스템으로 이뤄지지 않고 청와대가 모든 인사를 틀어쥐면서 업무 공백 우려와 함께 총선 전후로 보은인사가 판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3일 기획재정부와 관련 기관에 따르면 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수자원공사 사장,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고용정보원장 등에 대한 차기 CEO 공모가 진행되고 있다. 이재흥 고용정보원장의 임기는 지난해 10월, 심경우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11월인데 새 CEO가 선임되지 않으면서 아직도 직을 유지하고 있다. 기관장은 후임자가 결정되고 취임식을 치를 때까지 직무를 수행하는 게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신규 업무를 추진하기가 힘든 만큼 기형적인 모습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우체국물류지원단의 경우 이사장이 물러난 뒤 6개월이 넘도록 공석이다. 특히 이학수 수자원공사 사장과 황규연 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자리의 경우 한 차례 공모에서 퇴짜를 맞아 재공모가 진행되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 12월 임기가 만료된 이병래 예탁결제원 사장과 이달 중 임기가 끝나는 최철안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원장에 대한 후임자 인선 작업도 시작됐다.
이처럼 공기업 CEO 인사가 지연되는 것은 청와대가 검찰과의 갈등 등 각종 현안이 많아 뒤로 밀렸다는 분석이 있다. 아울러 오는 4월 총선을 전후해 ‘낙천’ 또는 ‘낙선’한 이들을 사장에 앉히는 보은인사를 염두에 두고 의도적으로 늦춘다는 시선도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주요 기관들을 청와대가 직접 챙기는 것은 이해하지만 모든 인사를 청와대 컨트롤을 통해 재가를 받으니 병목현상이 생긴다”면서 “공공기관장 인선을 시스템에 따라 후임이 정해지도록 해야 업무 공백 등의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총선에서 낙선할 인사들을 위해 후임 인사를 비워둬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기재부 관계자는 “적임자를 찾다 보니 시간이 걸리는데 직무대행 또는 기존 CEO가 업무를 하고 있어 공백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특히 21대 국회의원선거 출마를 위해 기관장들이 줄사표를 선언하는 현상에 대한 비판도 강하다. 매번 선거를 앞두고 CEO들이 임기 중에 물러나고 새로운 낙하산이 내려오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정상적인 경영이 힘들 수밖에 없다. 도로공사와 가스안전공사는 각각 이강래 사장과 김형근 사장이 물러나 진규동 사장 직무대행과 김종범 사장 직무대행 체제가 됐다. 대선캠프 출신인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지난 2일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고 새 이사장에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거론된다.
통상 임원추천위원회 구성에서부터 공공기관운영위원회 등 새로 CEO를 선임하기까지 한두 달 이상 절차가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최소 두 달여의 공백이 불가피한 셈이다. 관가와 공공기관에서는 새로 채워야 할 자리가 많거니와 집권 4년차인 올해가 사실상 인사를 챙겨줄 수 있는 마지막 시기로 보고 회전문 인사와 낙하산 인사 문제가 끊임없이 불거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상직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의 경우 전주 지역구 출마를 준비 중인데 공천이 확정될 때까지는 직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공직선거법 53조1항에는 ‘선거일 90일 전까지 그 직을 그만둬야 하는 사람’이 열거돼 있는데 중진공 이사장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을 받았다는 이유에서다. 익명의 한 전문가는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데 본연의 업무에 얼마나 전념할 수 있겠느냐”면서 “이사장직을 유지한 채 총선까지 치를 수 있다는 제도는 황당하다”고 꼬집었다. 주요 공기업 CEO 자리를 선거를 위한 징검다리 정도로 여기는데 과연 경영혁신이 가능했겠느냐는 비판인 셈이다. 이 외에 이정환 주택금융공사 사장, 윤종기 도로교통공단 이사장 등도 총선 출마를 저울질하며 사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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