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3,000평짜리 화성기지가 생겼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베이징의 럭셔리 백화점 SKP-S. 어두운 실내에 들어서면 열댓 마리의 로봇 양 떼가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이한다. 되새김질, 울음소리는 기본이고 미세한 떨림까지 살아있는 양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 진짜 같은 가짜가 만들어내는 이질감과 묘한 긴장감은 공간 전체로 이어진다. 한 층 오르면 공중에 매달린 우주선과 수십 마리의 펭귄. 그 위층엔 노인과 노인의 얼굴을 그대로 복제한 AI가 마주 앉아 있다.
꿈같은 이야기를 현실 속으로 끄집어낸 주인공은 글로벌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 ‘미래의 인류는 과거의 무엇을 그리워하고 갈망할 것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무리 없이 녹여냈다. ‘왜 화성일까’라는 의문은 이내 ‘화성일 수 밖에 없구나’라는 느낌표로 바뀐다. 낯섬과 친숙함이 공존하는 미지의 행성, 언젠가는 인류가 정착할 수도 있으리라 여겨지는 곳이 또 있을까. 촘촘하고 치밀한 전략과 설계가 거대한 세계관을 지탱한다. 여기에 그간 세계 곳곳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보여줬던 기술·경험과 응축된 상상력이 더해졌다. 자칫 난해해지기 쉬운 주제임에도 공간을 즐기는 데 어려움이 없다.
이 거대한 화성기지의 설계자 중 한 사람을 만났다. 밑그림부터 최종 구현까지 1년 6개월간 실무를 담당한 젠틀몬스터 공간 파트장 최우석. “놀랄만하던가요?” 그는 이렇게 반문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 ‘미래의 인류가 그리워할 과거’라는 키워드를 공간 전체에 풀어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심오하다’였다.
△젊은 층에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럭셔리 백화점을 고민하던 SKP 측에서 프로젝트를 제의했을 당시, 전사적으로 디지털, AI 등에 관심이 많은 시기였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걸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과 당시의 관심사가 맞물리면서 그런 주제가 도출됐다. 젠틀몬스터의 정체성은 패션회사지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는데, 그런 평소 습관이 묻어난 셈이다.
-실제와 같은 로봇 양떼·복제 AI 등의 조형물을 보면서 ‘놀라움’이 ‘씁쓸함’으로 바뀌더라.
△놀라움까지는 의도한 부분이고 그 이후의 감정은 방문객의 몫이다. 우리는 묻고 싶었다. 디지털이 발전하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 않을까.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고,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중에 지금의 무엇을 그리워하게 될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기존에는 “우리가 이런 재미있는 생각을 했어, 들어볼래?”라는 전달 형태로 공간을 꾸며왔다면, 이번에는 질문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방문객들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랬다.
- 왜 하필 화성이었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나 주제를 어떻게 하면 와닿게 풀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의 산물이다. 화성을 메타포로 풀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미지의 행성이지만, 영화 등에서 자주 접해 친숙함이 느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디자인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
△감정에 집중한다. ‘색을 어떻게 쓰자’ 이런 세부적인 건 나중 문제다. “와우”라는 감탄사가 나올 수 있는가,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 것인가. 그 감정에 최대한 집중한다. 그러기 위해서 ‘Weird Beauty’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고민한다. 이상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이유는 그게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냥 예쁜 게 아니라 이상한데 예뻐야 새로우니까. 매장 앞을 지나갈 때 어떤 걸 만들고 보여줘야 사람들이 이상한 감정을 느껴서 들어올 수 있을까. 들어온 사람들은 또 어떤 걸 보여줘야 2층으로 올라갈까 라는 치열한 고민과 전략이 우리가 연출한 모든 매장에 다 녹아있다고 보면 된다.
디자인 작업에 대해 좀 더 세부적으로 설명하자면, 모두 모여서 아이디어를 막 던진다. 그 아이디에이션 과정이 가장 길다. 영화, 만화책에서 본 이야기도 나오고 참고할만한 곳을 찾아서 미국, 뉴멕시코도 다녀왔다. 이런 이야기를 모아서 하나로 귀결시키는데 2~3달 정도 걸렸다. 그렇게 주제를 정하고 난 다음에 팀별로 공간을 나눠서 작업했다. 소주제를 각자 잡고 또 회의하고 또 회의하고. 회의의 연속이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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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P-S의 맞은 편에 SKP 백화점이 있다 보니 ‘젊은 세대가 찾아오려면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착화하고 시스템화되어있는 걸 다 바꾸자고. 일단 입구의 임팩트가 커야 했다. 아예 인공적인 구조물에 없을 것 같은 ‘자연’을 통으로 떠다 놓자 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백화점은 왜 하얀색 대리석 바닥에 밝은 이미지여야만 하나라는 문제의식은 어두운 조명으로 표현됐다.
디자인 제안 과정에 대해서 덧붙이자면, 종이 한 장만 들고 오기도 하고, 잡지를 뜯어서 콜라주하기도 하고 그냥 말로 하기도 하고 아주 다양하다. 각자 편한 방식으로 생각을 표현한다. 수백 장짜리 제안서나 PPT는 없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으면 된다. 일단 큰 방향성이 공유된다는 전제가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 워낙 스케일이 큰 프로젝트였다. 몇 명이 참여한 건가.
△공간 파트만 보자면 한 팀에 6명씩 7팀이 있는데 전원 투입됐다. 거기에 단발성 이벤트와 오프라인 프로젝트를 맡는 인력 40여 명도 모두 참여했다. 디지털 파트까지 힘을 보탰으니 총 100명 정도 된다. 기간은 기획까지 포함해서 1년 6개월 정도 걸렸다. 나 같은 경우에는 6개월간 매주 베이징을 가기도 했다.
-일반적인 인하우스 디자인팀 규모가 아니다.
△인하우스 디자인팀은 대부분 인테리어나 건축 전공이 많은데 우리는 구성이 좀 더 다양하다. 재미있는 걸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다 모였달까. 나도 미디어 아트 전공이고 우리 팀엔 조소나 파인아트, 도예, 무대연출 전공자도 있다. 보통 한 팀이 매장 하나를 맡는 식인데, 이렇게 큰 프로젝트로 모두가 참여한 건 처음이었다. 지하 1층의 푸드코트를 제외하고 1~3층의 공간 기획을 맡았다. 공간 디자인을 내부적으로 소화하는 걸 원칙으로 삼다 보니 다른 회사의 인하우스 디자인팀에 비해 규모가 크다.
- 상상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창조해낸 이 공간은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영향을 준 것들을 몇 개만 꼽는다면 미국에 있는 외계 지적생명체 탐사 연구소 ‘세티(SETI)’, 뉴멕시코의 우주공항 ‘스페이스포트 아메리카(Spaceport America)’. 버닝 맨 페스티벌(Burning Man Festival)도 참여했다. 1년에 한 번 미국 사막에 가상 도시를 세우고 축제기간이 끝나면 모든 걸 불태우는 예술 축제가 기억에 남는다.
- 현장은 늘 변수가 있지 않나.
△SKP-S의 기존 건물에 화물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설치물이 워낙 많다 보니, 화물 엘리베이터 없이는 운반이 불가능해 외벽을 다 뜯고 임시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디자인 안대로 시공이 되지 않아 애먹은 경우도 있었다. 바닥에 콘크리트와 파란 대리석이 교차로 나타나도록 스케치를 넘겼는데, 오픈 직전 가서 보니 파란 대리석이 안 보이더라. 알고 보니 콘크리트 밑에 대리석이 깔려 있었다. 별 수 있겠나. 3일 동안 바닥에 콘크리트를 갈아내기도 했다.
- 건물 전체에 스토리가 펼쳐져 있어 모든 층을 돌아보도록 유도하는 것도 중요했을 텐데.
△건물 가운데 에스컬레이터가 하나 있는데 그걸 중심으로 층별로 다른 무드로 연출하는데 주력했다. 에스컬레이터를 기준으로 보여지는 시야에서의 이미지가 주는 그 감정들이 어떻게 달라야 하나 고민했다. 1층이 ‘이게 무슨 쇼핑몰이지’하는 놀라움과 이상함이라면 2층은 좀 더 밝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다. 다니엘 로진 (Daniel Rozin)의 키네틱 펭귄과 정원, 중국의 현대미술가 슈젠의 조각품이 어우러지면서 따뜻한 감성. 3층으로 가면 공상과학적 요소가 가장 많이 느껴진다. 주제를 공유하면서 적절히 변주해내는 것, 궁금해서라도 다 돌아보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기획했는데, 현지 반응을 보니 성공한 것 같다.
- 대부분의 브랜드가 제품이나 브랜드를 돋보이게 하는 매장 구성에서 포인트로 오브제를 배치하는 정도로 타협한다. 그런데 젠틀몬스터의 매장은 그런 공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
△매장을 매출이 발생하는 공간으로만 접근하지 않기 때문 아닐까. 이미지 소비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려면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공간이어서는 안된다. 젠틀몬스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을 풍겨야 하고, 그 감성에 공감하고 나서 친구들에게 ‘이런 곳이 있으니 가봐’라고 권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매장을 연출한다. ‘다름’을 표출하고 싶은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공간에 초점을 둔다. 우리가 정답을 찾은 건 아니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다음엔 어떻게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을까, 더 경험적인 컨텐츠가 필요할까, 인터렉티브 디자인을 넣을까 등등 내부적으로 그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 .
/김나영기자 iluvny23@sedaily.com
/사진제공=젠틀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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