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주요 대학은 학사일정을 조정하거나 위생을 강화하는 등 비상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일부 대학은 재학 중인 중국인 유학생들에 대한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개강 이후 대학을 시작으로 신종 코로나 추가 확산이 우려된다.
3일 방문한 서울 시내 대학가는 평소보다 한산했다. 통상 방학에도 자격증이나 취업 준비를 위해 학교를 찾는 학생이 많지만 이날은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우려로 학교 내 도서관과 식당에 학생이 거의 없었다. 이날 서울 광진구 건국대 학생식당에서 만난 공인회계사(CPA)시험 준비생 박모(24)씨는 “학교 도서관이 아닌 곳에서는 공부가 잘 안 돼 위험한 시기임에도 학교에 왔다”며 “확실히 몇 주 전에 비해 학교에 오는 사람이 확 줄었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구 서울대 교정도 신종 코로나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기숙사 식당에는 혼자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밥을 먹는 학생들이 다수였다. 중국인 학생이 다가오면 다른 자리로 황급히 이동해 식사를 하는 학생도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에서는 강의가 진행되는 일부 건물 앞에 손세정제가 비치돼 있었고 학생들은 강의실 안에서도 마스크를 낀 채 수업을 들었다. 서울 동작구 중앙대 기숙사에는 열감지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대학들은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예정돼 있던 주요 행사를 줄줄이 취소했다. 신입생과 재학생이 강당 등 좁은 공간에 모이는 행사의 특성상 바이러스가 퍼지기 쉽다는 우려 때문이다. 경희대·건국대·홍익대 등은 입학식과 졸업식을 취소하기로 했다. 이화여대도 졸업예배와 졸업식을 모두 취소했다. 연세대·성균관대·숙명여대·성신여대 역시 이달 말 또는 다음달 초 열기로 했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대의 경우 인문대·사회대 등 주요 단과대가 새내기 배움터 행사를 취소했다. 학교본부도 정시 합격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신입생 3차 오리엔테이션을 연기했다.
다만 일부 대학은 중국인 학부생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개강 이후 감염증이 더욱 확산될 공산이 큰 상황이다. 경희대·한국외대·건국대 등 일부 대학은 방학을 맞아 본국에 간 중국인 학부생의 소재나 귀국일정 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경희대 관계자는 “국제교류처를 통해 중국 학부생들의 위치 등을 파악할 예정”이라면서도 “아직 구체적으로 파악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건국대 관계자 역시 “중국인 학부생에 관한 모든 부분은 아직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방학에도 강의가 이어지는 한국어학당 소속 외국인들이 설 연휴 직후 대체로 서울에 돌아오는 반면 학부 소속 외국인들은 개강 직전까지 중국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새 학기를 맞아 한꺼번에 돌아올 이들에 대한 조치가 미흡할 경우 다음달 대학에서부터 감염증이 퍼져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 공포는 취업 준비에도 지장을 주고 있다. 취업에 필요한 어학 성적 취득을 위한 시험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지만 응시를 미뤄야 할지 고민하는 취준생들이 늘고 있다. 당장 오는 9일에는 전국 주요 고사장에서 영어능력평가시험인 토익시험과 중국어능력검정시험인 HSK 시험이 동시에 예정돼 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확산 공포가 커지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응시를 고민하는 취준생들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재취업을 위해 어학시험을 준비 중인 직장인 김모(29)씨는 “국내에서도 사람 간 전파를 통한 신종 코로나 감염자가 나왔다고 해서 걱정”이라며 “특히 밀폐된 공간에서 여러 사람이 시험을 치러야 하다 보니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두렵지만 이번 시험을 놓치면 원하는 기업에 채용원서를 낼 수 없어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토익시험의 경우 지금 취소하면 4만4,500원에 달하는 응시료 중 절반밖에 돌려받지 못하는 것도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취준생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럼에도 주말 이후 신종 코로나 공포가 더욱 확산하면서 시험 주관사에는 응시생들의 취소·환불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시험 주관사들은 긴급대책 마련에 나섰다. 감염 가능성에 대비해 응시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시험 보는 것을 허용하고 고사장 현장에서 발열 여부를 점검해 고열로 판정될 경우 응시자격을 박탈하고 즉각 귀가조치하기로 했다. /이희조·한동훈·허진·김현상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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