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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려본들 어쩔 것이냐...부릅뜨고 다시 보라!

<두산큐레이터워크샵 기획전 '노려본들 어쩔 것이냐'>

박수지,박지형,천미림 큐레이터가 본 작가 장지아

미공개 영상부터 일기같은 사적인 기록까지

감정의 동요, 수행적 글쓰기, 컬트요소 등

'금기·폭력·사랑...' 작품의 이면 '달리보기'

장지아 작가가 2013년부터 꾸준히 그리고 있는 ‘레드 드로잉’ 연작 중 ‘노려본들 어쩔 것이냐!’




“안 보여. 다리 조금만 벌려 봐요. 어깨는 젖히고.”

누드 퍼포먼스에 응한 여성에게 주어진 과제는 ‘서서 오줌누기’였다. 직업 모델이 아닌 일반인이라 더욱 어색한 이들에게 작가가 외친다. 오줌이 쏟아지는 순간 참았던 웃음이 울음처럼 터져 나온다. 부끄러움과 무안함을 덮는 웃음인지, 몰랐던 해방감과 희열이 불러온 울음인지 모를 복합적인 흐느낌이다. 현대미술가 장지아(47)가 2006년에 제작한 ‘서서 오줌누기’의 제작 영상이다. 지난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을 비롯한 여러 전시에서 선보인 작가의 대표작인데,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이 맨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다.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1층 두산갤러리에서 오는 15일까지 열리는 장지아의 개인전 ‘노려본들 어쩔 것이냐’다.

장지아 작가


두산갤러리는 지난 2011년부터 매년 큐레이터 지원·발굴 프로그램인 ‘두산큐레이터워크샵(DCW)’을 진행해 왔다. DCW에 참여한 박수지·박지형·천미림 3명의 큐레이터는 작가 장지아의 지난 20여 년의 작품을 각자의 관점에서 접근해 하나의 전시를 기획했다.

박수지 큐레이터는 정동(情動·affect)의 맥락에서 장지아의 작품을 봤다. 불쾌와 유쾌, 가학과 피학, 인가와 금지, 흥분과 불온, 희열과 폭력 같은 상반된 감정이 ‘근본적 동요’로 공존하는 것을 여러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해 의미를 분석했다. 2000년작 영상 ‘작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에서는 직접 퍼포머로 나선 작가가 벽 앞에 섰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건장한 팔뚝의 남성이 그녀를 때리고 머리채를 흔들며 가래침까지 뱉는다. 전시장에서 만난 장지아 작가는 “후배에게 부탁해 촬영했는데 예측 불가능한 상황과 저항하지 못하는 폭력 앞에서 나도 모르게 의도치 않은 웃음이 보였다. 처음에는 기록용으로 찍은 영상이었건만 그 흘러나온 미소가 중요하게 여겨져 ‘작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소개했다.

장지아의 ‘온 마이 마크!(On my mark!)’ 전시 전경. /조상인기자




작품이 되는 것에 동의한 커플들에게 키스마크로 몸에 알파벳을 새기도록 요청한 ‘온 마이 마크!(On My Mark)’ 또한 쾌락과 소통, 사랑과 폭력이 뒤얽혀 있다. 박지형 큐레이터는 이를 ‘지독한 글쓰기의 과정’이라며 글쓰기와 수행성의 의미로 읽어낸다. ‘온 마이 마크!’는 미군 상관이 부하에게 명령을 내리는 구호인데, 작품에서는 벗은 몸의 은밀한 부분에 새겨진 O, N, M 등의 글씨를 발견할 수 있다. 성소수자, 성노동 인권운동가 등 등장인물들의 정체성은 제각각이지만 벗은 살갗에서 이것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의 정형시 ‘소네트’의 문장을 소의 피를 섞은 물감으로 써내려 간 ‘사랑의 노래’는 낭만적인 사랑과 폭력적인 피의 충돌 지점을 읊조린다. 얇은 거즈에 적은 것이라 뒷벽에 드리운 그림자까지도 작품의 일부가 된다. 작가는 “죽은 동물의 피로 영원한 사랑의 노래를, 3개월 넘게 쭈그려 앉은 채로 썼다”고 고백한다.

장지아 작가가 2013년부터 지속해오고 있는 ‘레드 드로잉’ 연작(앞쪽)과 소의 피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적은 2015년작 ‘사랑의 노래’ 전시 전경.


천미림 큐레이터는 같은 작품들을 인물의 독특함, 매체의 특성 등을 짚어 ‘컬트적 관점’에서 들여다봤다. 그간 저항적인 페미니즘 작가로 주로 인식된 장 작가의 개인적, 철학적 이면을 다시 보자고 청한다. 핏빛 물감으로 그리고 있는 ‘레드 드로잉’ 연작은 작가 자신과 가족들이 병원을 자주 들락거리며 심신이 유약해졌던 지난 2013년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동기나 내용 면에서 스스로를 관찰하고 도닥인 일기에 가깝다. 전시 제목으로도 쓰인 ‘노려본들 어쩔 것이냐’는 불안하던 어느 날, 앞에 가던 트럭의 녹슨 잠금쇠가 노려보는 눈처럼 보였던 장면을 그린 것이다.

언뜻 도발적인 이미지로 드러나는 전시지만 차마 말로도 끄집어내지 못했던 ‘어떤 부분’을 어루만져주는 힘이 있다. 세 명의 큐레이터가 기획했지만 하나의 전시로서 완결성이 특히 돋보인다.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장지아의 2004년 영상작품 ‘공주는 말했다’ 중 한 장면. /사진제공=두산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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