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쳐도 휙 날아가는 ‘장타 친화’ 코스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뻥 뚫어주지만 치는 이들의 머리는 복잡하게 만든다. 평소와 똑같이 공략했다가는 타깃을 훌쩍 넘기는 ‘홈런 쇼’에 눈덩이 스코어를 떠안기 십상이다.
21일(한국시간) 멕시코시티 차풀테펙GC(파71·7,345야드)에 나선 선수들은 샷 하기 전 클럽 선택에 있어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연습라운드 뒤 적어둔 클럽별 거리도 꼼꼼하게 살폈다. 차풀테펙GC는 2,300m 고지대에 위치한 골프장이다. 공기저항이 적어 타구가 일반적인 코스보다 10~16% 더 뻗어 나간다. 오르막·내리막은 따로 계산해야 해 정상급 선수들도 거리를 가늠하는 데 애를 먹는다. 세계랭킹 1위 로리 매킬로이는 200야드는 8번 아이언, 300야드는 하이브리드 클럽으로 공략했다. 15번홀(파5·572야드)에서는 드라이버 샷을 378야드나 보내면서도 페어웨이를 지켜 간단히 버디를 잡기도 했다.
화려한 장타 쇼도 멋졌지만 매킬로이에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19승 희망을 안긴 일등공신은 성실한 퍼터였다. 매킬로이는 이날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멕시코 챔피언십(총상금 1,050만달러) 1라운드에서 이글 1개, 버디 5개에 보기 1개로 6언더파 65타를 적어 단독 선두로 나섰다. 4언더파 2위 그룹인 버바 왓슨, 저스틴 토머스(이상 미국)와 2타 차다.
자신의 두 번째 홀인 11번홀(파5)부터 느낌이 좋았다. 핀까지 274야드를 남긴 두 번째 샷 때 4번 아이언을 잡은 매킬로이는 높은 탄도의 샷으로 홀 5m 거리에 멈춰 세운 뒤 이글 퍼트를 넣었다. 이후 2번홀(파4)에서 4m 버디 퍼트로 아낀 1타를 4번홀(파4) 보기로 잃었지만 6번홀(파5) 8m 버디로 분위기를 바꿨다. 이후 8번홀(파4)에서 4m 남짓한 버디를 넣어 1타 차 단독 선두가 된 그는 9번홀(파4) 3m 버디로 첫날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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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리비에라CC에서 치른 제네시스 대회 때 공동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맞고도 퍼터가 말을 안 들어 공동 5위로 미끄러졌던 매킬로이는 이번 주 다른 퍼터를 들고 나와 효과를 봤다. 그린 적중 시 퍼트 수 1.8개를 기록했고 퍼트로 줄인 타수(스트로크 게인드 퍼팅)는 전체 4위였다. 그린 적중률 66.6%를 찍은 가운데 퍼트 수는 26개였다. 중장거리 퍼트를 쏙쏙 넣은 매킬로이는 “여기 와서 퍼터를 바꿨다. 34인치짜리 옛 퍼터를 들고 나왔는데 지난주의 35인치짜리보다 더 편안하고 퍼트 라인을 잘 찾아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보다 한 칸만 더 앞으로 가면 좋겠다”고도 했다. 지난해 이 대회에서 첫날 8언더파를 쳤던 매킬로이는 마지막 날 주춤해 공동 2위에 만족해야 했다.
1년 전 성적에서 한 칸 더 앞으로 가면 매킬로이는 WGC 4개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WGC 슬램’을 달성한다. 지난해 11월 WGC HSBC 챔피언스를 제패한 그는 WGC 2개 대회를 연속 우승하는 3호(타이거 우즈, 더스틴 존슨) 기록도 노린다. 유일한 WGC 슬램 기록 보유자인 존슨은 5오버파 76타에 그쳐 공동 62위에 머물렀다. 매킬로이와 11타 차다. 차풀테펙으로 옮긴 이후 두 차례(2017·2019년)나 우승한 존슨이지만 이날은 퍼트가 따라주지 않았고 샷 거리 조절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10번홀(파4)에서 드라이버 샷으로 393야드를 보냈으나 74야드를 남긴 두 번째 샷으로 그린을 넘기는 바람에 파에 그쳤다. 지난주 우승자 애덤 스콧(호주)도 3오버파 공동 49위에 머물렀다.
한국 선수 중에서는 임성재가 2언더파 공동 8위로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7번홀(파3) 그린 옆에서 벙커 샷 버디를 터뜨려 2언더파를 만들었다. 임성재와 같은 조로 경기한 패트릭 리드(미국)도 2언더파다. 지난해 아시안 투어 상금 3위 자격으로 출전한 이태희는 9오버파 공동 70위다. 72명이 참가해 컷 탈락 없이 겨루는 이 대회 우승상금은 178만5,000달러(약 21억5,300만원)다. 우즈와 세계 2위 브룩스 켑카(미국)는 이번 주 휴식한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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