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지 업계 1위 한솔제지는 덴마크 맥주 기업 칼스버그를 주목하고 있다. 조만간 시판될 예정인 ‘종이로 만든 맥주병’ 때문이다. 맥주 특유의 탄산을 유지하면서도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생분해성 고분자를 찾기가 어려워 개발 착수 5년 만에 제품이 출시되는 터라 관심이 더 크다. 특히 칼스버그의 제품이 판매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국내 제지 업체들은 ‘칼스버그 이펙트’를 기대하고 있다. 제지 업계의 한 임원은 “국내에서도 종이병 맥주를 놓고 이런저런 타진과 제안이 오가고 있을 것으로 본다”며 “종이병 맥주의 경우 친환경적이어서 소비자에게 긍정적으로 어필할 수 있고 새 시장이라 주류 업체와 제지 업체 모두에 윈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종이병 맥주 사례는 전 세계적인 친환경 열풍을 보여준다. 친환경 분야가 유망한 신시장으로 부각되면서 기업들은 너도나도 탈(脫)플라스틱, 탈비닐을 목표로 적극적인 연구개발(R&D)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 펄프 공장을 보유한 유일한 업체인 무림은 최근 신소재인 ‘WPC(Wood Plastic Composite)’를 개발했다. 펄프에서 플라스틱에 버금가는 강도를 가진 친환경 소재를 만든 것이다. 무림은 WPC가 일반 플라스틱이 활용되는 야외 건축재, 자동차 내장재 등에 사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소재로 만든 칫솔 제품도 선보였다. 무림은 또 울산 테크노파크 내 기업과 펄프의 부산물로 자동차 내장재인 ‘도어트림’에 활용할 수 있는 소재 개발에도 나섰다. 도어트림은 자동차 문 안쪽 잠금장치와 스피커·창문장치 등을 덮는 부분으로 충격을 완화해주는 기능을 한다. 현재는 합성수지(플라스틱)로만 만들어지는데 펄프가 대체재가 될 수 있다. 모두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몸부림이다. 제지 업계의 한 임원은 “신소재 개발을 통해 종이가 친환경을 위한 최고의 옵션이 될 수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며 “이제 친환경 콘셉트는 자연보호뿐 아니라 시장창출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가구 업계도 친환경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현대리바트는 붙박이장 등 가구 배송 시 제품 모서리 보호나 빈 공간을 채우는 완충재로 스티로폼 대신 100% 재생종이로 만든 친환경 완충재 ‘허니콤’을 제작해 사용하고 있다. 고객의 반응도 좋다. 회사 측은 “단순히 허니콤을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구 배송에 이용된 허니콤을 수거해 이상이 없는 제품은 재사용하고 파손된 완충재는 재활용하는 친환경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친환경적인 펄프 활용의 스펙트럼은 갈수록 넓어지는 추세다. 일본의 경우 펄프에서 식용 섬유질인 바이오글루텐 성분을 추출해 누들을 만들고 있고, 미국 의류 업체인 파타고니아는 펄프에서 섬유에 활용 가능한 소재를 짜내는 데 성공했다. 한 재계 임원은 “글로벌 친환경 전쟁 자체가 국내 기업에 새 모멘텀을 제공하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봤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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