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초대형 악재에 부딪힌 정부가 20조원 규모의 1·2차 지원대책에 이어 3차 대책으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추경으로 위기에 몰린 중소기업·소상공인과 침체된 지역경제를 지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서울경제가 인터뷰한 경제 원로들은 추경만으로는 꽁꽁 얼어붙은 실물경제를 완전히 녹일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친기업·친시장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경으로 확보한 재원을 내수 활성화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사업에 집중 투입해야 한다는 조언도 뒤따랐다.
추경보다 반기업 정책 수정이 우선
지난달 28일 정부가 민생·경제종합대책을 발표하자 단기적인 경기부양책만 있을 뿐 구체적인 투자 활성화 방안이 담기지 않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경제 전문가들도 민간 활력을 높일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없으면 추경을 하더라도 위기 극복에 한계가 있다고 쓴소리를 보탰다.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전 청와대 정책실장)는 “시장에서 인센티브가 작동하도록 경제정책의 큰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정책의 부작용을 알았으면 이제 바꿀 필요가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추경을 아무리 많이 편성해 재정을 풀어본들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전 금융위원장) 역시 “돈만 풀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반기업·반시장 정책을 전면 수정하는 작업이 추경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추경에 따른 재정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는 만큼 재정확대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백 교수는 “재정 건전성이 한국 경제의 신용도를 유지하는 데 가장 큰 축이었는데 급격히 악화될 경우 자칫하면 대외신인도에 악영향을 줄까 걱정된다”며 “중장기적으로 금융시장 불안까지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재정확대, 금리 인하, 유동성 확대 이런 부분을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일자리 늘어나면 경기 절로 살아나
경제 전문가들은 추경으로 확보한 재원을 코로나19 방역에 최우선 투입하되 여행·항공·음식·숙박 등 코로나19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업종에 대한 피해 회복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번 사태로 큰 피해를 본 자영업자 등에 초점을 맞춘 ‘핀셋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태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전 국무총리실장)은 “과거 전염병 사태와 비교했을 때 이번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빠르고 피해 범위도 소비·생산·수출 등 전 분야에 걸쳐 있어 경제충격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추경이 필요하다”면서도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편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도 “추경을 하더라도 1차적으로 코로나19 방역에 쓴 뒤 2차적으로 움츠러든 민간 소비와 투자를 부양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건설 등 일자리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투자보다 지속적인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투자사업을 발굴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일자리가 많이 늘면 경기는 저절로 활성화된다”며 “올 한 해만 때운다는 식으로 추경하지 말고 소비성 지출보다 투자성 지출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먹으면 끝인 고기를 나눠주지 말고 고기잡이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번에 대규모 추경은 자제해야
한번에 추경을 끝내기보다 당장 급한 곳부터 지원한 뒤 사태 추이를 보면서 추가 대책을 내놓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지난 2015년 메르스 당시 전체 추경안 11조6,000억원 가운데 피해기업 지원과 경기 대응에 쓰인 돈은 2조5,000억원에 그쳤다. 나머지는 지방자치단체 도로 건설, 지역 축제 등 민원성 예산이 포함되면서 추경 효과가 떨어졌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김동수 전 공정거래위원장(고려대 미래성장연구소장)도 “추경을 한번에 크게 편성하면 무분별하게 (재정이) 투입되는 측면이 있다”며 “한번에 끝낼 생각하지 말고 2차 추경까지 생각하면서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조지원·나윤석·한재영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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