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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빗장 잠그면 경쟁사에 반도체 물량 뺏기고 생산망도 쇼크"

[코로나19 기업들 한국發 입국제한 파장]

체온 37.5도 넘으면 미국 못가

영업력 훼손으로 D램 실적 타격

스마트폰은 홍보전략 차질 한숨

"직원들 미리 보내나" 전전긍긍

美 여행금지땐 최신기술 물거품

베트남 제한에 공급망에 차질도





# 국내의 한 정보기술(IT) 기반 대기업은 미국 현지법인에 대한 인력 추가 파견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미국법인에 현지 주재원 등이 상주하지만 마케팅·연구개발(R&D) 교류 등을 위해 미국 출장 인력을 아예 몇달간 상주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지 생산라인에 대한 인력 파견이 멈출 경우 가동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할 수 있다고 우려돼 국내의 핵심인력 몇 명을 사전에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미국의 경우 주(州)별로 대응방안이 조금씩 달라 현지 주재원을 중심으로 미국 내 흐름을 매일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2일 산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기업들 사이에서 미국이 갑작스레 한국인의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이날 현재 한국인 입국을 아예 금지하거나 일정 기간 제한하는 국가는 36곳이며 입국 절차를 강화한 나라도 46곳에 달한다. 미국은 아직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지 않았지만 대구를 ‘여행금지(4단계)’, 한국 전체를 ‘여행재고(3단계)’ 지역으로 각각 분류한 만큼 언젠가는 한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단행할 수 있다. 정부도 이러한 가능성에 대비해 이날 국적항공기뿐 아니라 외국항공사의 미국행 탑승객 전체에 대한 출발 전 발열 검사를 확대해 체온이 37.5도를 넘으면 탑승을 금지하기로 했다.

미국에 공장을 둔 국내 기업들은 며칠 전만 해도 “설마 우방인 미국이 한국인 입국금지에 나서겠느냐”며 여유를 부렸지만 최근 상황이 급박해지자 현지 모니터링을 대폭 강화했다. 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미국의 자국 보호 개념이 한층 강해지고 있다”며 “이런 추세가 보호무역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가전 공장, 텍사스주에서 반도체 공장을 각각 운영하는 삼성전자(005930)는 한국 인력의 미국 내 입국금지 시 대응방안 등을 시나리오별로 검토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생산한 서버용 D램의 최대 고객사인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 등이 모두 미국에 본사를 둔 만큼 영업력 훼손 시 마이크론 등에 물량 일부를 빼앗길 수 있다. 롯데케미칼(011170)은 루이지애나주에서 석유화학 공장을, LG화학은 미시간주에서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각각 가동 중인 만큼 한국인 입국금지 시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096770)은 내년 말 본격 가동될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 공장 건설이 한창인 만큼 각 공정에 필요한 인력을 입국금지 조치 이전에 파견할 계획이다. 기업들은 웬만한 출장은 화상회의 등으로 대체하며 ‘출장 없는 글로벌 경영’을 도입한다고 하지만 실효성은 의문시된다.

5G를 등에 업고 수익개선을 노리던 스마트폰 업계 또한 미국 당국의 조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LG전자는 지난달 27일 홈페이지를 통해 플래그십 스마트폰 ‘V60 씽큐’를 공개했지만 세계 최대 모바일전시회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가 취소되며 홍보전략에 차질이 생긴 상황이다. 미국이 한국인에 대한 입국제한 조치를 시작할 경우 이달 말 V60 씽큐 출시를 앞두고 미국 이동통신사와의 미팅이 어려워져 영업에도 제약이 생길 수 있다.



미국이 한국 전체를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할 경우도 걱정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각 공정 단계에서 램리서치·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스 같은 미국 업체의 장비를 대부분 사용한다. 이들 업체는 한국법인을 통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에 각종 장비를 공급하고 있지만 최근 램리서치가 개발한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 박막’ 같은 최신 기술은 미국 현지인력의 도움 없이는 국내 도입이 힘들다.

베트남의 한국인 입국제한 조치는 중국에 이어 한국의 글로벌 공급망을 붕괴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공급망의 최전선에 있는 중견·중소기업들은 베트남의 조치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업체들은 업무상 출장을 화상회의로 대체하는 등의 대책을 세웠지만 현지 바이어와의 만남이 사실상 어려워져 수주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크다. KOTRA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출장이 어려운 한국 기업을 대신해 해외 바이어를 대신 만나주는 ‘긴급 지사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 추세라면 관련 수요를 모두 감당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대기업의 협력사인 한 IT 부품업체 관계자는 “현지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방역작업을 철저하게 실시하는데 그래도 확진자가 나올까 봐 항상 조마조마하다”며 “만약 현지 생산공장에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하는 날에는 공장을 멈춰 세워야 하는 최악의 사태가 빚어져 회사 존립마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생산량의 60%가 베트남에서 나오는 의류업체 한세실업은 사태 장기화로 실적이 악화되지 않을까 고심이 깊다. 이 회사 관계자는 “현지 바이어와 만나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데 바이어 미팅이 숱하게 취소되고 있다”며 “당장은 이미 해놓은 물량이 있어 괜찮다지만 다음 시즌이 걱정”이라고 했다.

/양철민·권경원·박호현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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