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국내에서 원유 가격을 토대로 설계된 파생결합증권(DLS) 상품이 무더기로 원금 손실 가능 구간(녹인·knock in)에 접어들었다. 주요 증권사들이 손실구간에 들어갔다고 알린 DLS 규모만 약 4,700억원에 달한다. 이와 함께 글로벌 증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공포에 눌려 급락장을 나타내며 주가연계증권(ELS)에도 원금 손실 비상등이 켜졌다.
1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NH투자증권·미래에셋대우·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KB증권 등은 이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원유 DLS들에서 원금 손실 조건이 발생했다고 알렸다. 이들 증권사가 알린 녹인 DLS는 총 183개이며 이들 상품의 발행잔액은 3,389억원이다. 증권사별로는 NH투자증권이 50개(공·사모 포함) 1,410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미래에셋대우 25개 795억원, 한국투자증권 64개 514억원, KB증권 13개 278억원, 삼성증권 30개 143억원 수준이다.
원유 DLS는 WTI 또는 브렌트유 등 국제유가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을 경우 사전에 약정한 이자를 주는 파생상품이다. 다만 기초자산 가격이 가입 당시의 40∼60% 이하로 내려가면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현재 조기·만기 상환되지 못해 남아 있는 원유 DLS의 상당수는 WTI 기준으로 50~60달러선에서 발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전일 국제유가가 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등의 급락세를 보이자 녹인을 피하지 못했디. 실제 16일(현지 기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WTI는 배럴당 28.70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30달러선이 무너졌다. 이는 지난 2016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같은 날 브렌트유도 전일 대비 11.23% 하락한 30.05달러로 마감하는 등 급격하게 하락했다. 국제유가의 폭락이 원유 DLS에 직격탄이 된 것이다.
앞서 주요 증권사들은 원유 DLS가 녹인에 들어갔다고 알린 바 있다. 10일 NH투자증권·미래에셋대우·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 등은 총 129개의 원유 DLS 가격이 녹인 구간 아래로 떨어졌다고 공지했다. 당시 이들 DLS는 총 1,533억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현재까지 알려진 규모만 4,922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물론 이들 DLS의 손실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다만 상품의 만기까지 큰 폭의 유가 반등이 있어야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는 유가가 당분간 반등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해외 지수 연계 ELS도 초비상이다. 유럽 대표지수인 유로스톡스50지수가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다. 이에 이날 NH투자증권·삼성증권·한국투자증권·KB증권·신한금융투자·하나금융투자가 발행한 53개 ELS가 손실 가능 구간에 진입했다. 일각에서는 2016년 홍콩 증시 급락으로 이와 연계된 ELS가 큰 원금 손실을 봤던 사태가 재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완기·이혜진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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