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 충격이 심상치 않습니다. 코스피와 코스닥 등 유가증권시장이 폭락하고 환율이 장중 1,290원대까지 오르는 등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없었던 경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유럽·중국·일본 등 전 세계적으로 경기 둔화가 확실시되고 있는데요. 한국은행이 이로 인한 유동성 부족 문제와 흑자기업 도산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26일 ‘무제한 돈풀기’에 나섰습니다. 중앙은행이 시중에 돈을 푸는 것과 코로나19로 인한 불안 해소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걸까요.
◇‘무제한 돈풀기’ 나선 주요국 중앙은행, 직접 시장에 참여
우선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한은보다 먼저 나서서 돈풀기에 나섰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양적완화(QE·Quantitative Easing) 규모를 기존 7,000억 달러에서 무한대로 확대한다고 밝혔습니다. 필요한 만큼 미국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무제한으로 사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또 기업어음(CP)을 직접 매입하는 기구(CPFF·Commercial Paper Funding Facility)를 설립해 1조달러를 사들이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일본은행(BOJ)은 지난 16일 발표한 상장지수펀드(ETF) 직접 매입의 한도를 기존 연간 6조엔에서 12조엔으로 늘렸습니다. 유럽(ECB)은 7,500억유로 규모 국채와 기업어음(CP)을 매입하는 동시에 금융기관의 건전성·회계처리 기준을 완화했습니다.
중앙은행이 통상 금융기관의 유동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접적으로 해당 기관들의 채권을 사들여 시장에 돈을 푸는 방식을 택해왔다면, 코로나19는 중앙은행이 직접 시장에 참여해 돈을 풀도록 바꿔놓은 셈이죠. 예를 들어 미 연준이 기업어음(CP)을 산다는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신용도가 낮아져 유통이 어려운 기업의 어음을 중앙은행이 사들임으로써 당장 현금흐름에 문제가 생긴 기업을 지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은도 동참, ‘한국판 양적완화’ 효과 낼까
한은은 지난 26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환매조건부채권(RP)를 무제한 매입하고 공개시장운영 대상기관 및 대상증권 확대를 내용으로 하는 ‘한국은행의 공개시장운영규정과 금융기관대출규정’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오는 4월부터 6월까지 일정 금리 수준 아래서 시장의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 없이 공급하는 주단위 정례 RP매입 제도를 도입한 것인데요. 금융시장의 안정을 꾀하고 정부의 100조원 규모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서입니다. 6월 말까지 매주 화요일 정례적으로 91일 만기 RP를 매입하게 됩니다.
매입 한도를 사전에 정하지 않고 시장 수요에 맞춰 금융기관의 신청액을 전액 공급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RP 거래 대상이 되는 적격증권만 제시하면 매입 요청한 금액을 모두 한은이 사들이게 됩니다. 입찰금리는 기준금리(연 0.75%)에 0.1%포인트를 가산한 0.85%를 상한선으로 해 입찰 때마다 공고하기로 했죠.
아울러 한은은 RP 입찰 참여 금융기관에 통화안정증권·증권단순매매 대상 증권사 7곳과 국고채전문딜러 증권사 4곳을 추가하고 RP 매매 대상 증권에도 한국전력 등 공기업 채권 8종을 더했습니다. 대출 적격담보증권에도 공공기관 특수채와 은행채가 추가됐습니다.
RP란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이후 다시 사는 조건으로 채권을 팔고 경과기간에 따라 소정의 이자를 붙여 되사는 채권인데요. 한은이 RP를 매입하면 시중에 돈이 풀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날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됐고 일부는 자금조달이 원활하지 않은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한은법상 영리법인 대출 조항이 있는데 그 조항을 발동할지 여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추가 대책 가능성도 열어뒀습니다.
다만 한은의 이러한 대책이 효과를 얼마나 낼지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RP 매입을 통해 무제한 공급한다는 측면에서는 증권사들의 유동성 흐름을 원활하게 해줄 수 있지만 결국 간접 방식이어서 참여 금융사들이 얼만큼 위험부담을 감수할지가 관건입니다. 자금을 공급받은 금융사들이 신용도 낮은 기업에 대출해주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다시 중앙은행에 예치해야 하는 지급준비금으로 넣게 될 경우 시장 유동성이 늘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 양적완화에 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조치의 성패는 금융사들이 자금을 초과 지준금으로 넣지 않고 얼마나 가계·기업 등 실물 부문에 뿌리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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