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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팀 24/7]망각과의 전쟁…흐린 기억속의 '그놈'을 끄집어내다

■몽타주 수사기법

피해자·목격자 기억 사각지대서

가장 비슷한 생김새 찾도록 도와

'3D변환'으로 나이 든 모습 구현

범인 덜 닮아도 심리적 압박효과

장기 실종·미제사건에서 맹활약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소속 황성용 경사가 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몽타주 제작을 시연하고 있다./성형주기자




“증거도 없고 마땅한 수사 방향도 없을 때는 결국 몽타주 수사를 떠올리게 되죠.”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소속 황성용 경사는 “최신 수사기법들이 등장하며 몽타주 기법이 활용되는 경우가 줄고 있지만 여전히 고유의 역할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황 경사의 말처럼 폐쇄회로(CC)TV, 블랙박스 등 활용 가능한 영상 증거들이 늘면서 범인 검거에서 몽타주 기법의 기여도는 점차 줄어가는 추세다. 그럼에도 여전히 CCTV나 블랙박스 등이 비추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범죄 등에서 수사 활로를 여는 최후의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게다가 근래에는 강력범죄 용의자 등을 찾는 용도에서 장기 실종자를 찾고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수단으로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2020년 4월 기준 전국에서 몽타주 전문 수사관으로 활동하는 경찰은 총 22명이다. 이들은 몽타주 기법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해마다 1~3일 과정의 워크숍에 참여해 면담기법, 법 최면 연계, 얼굴의 해부학적 구조 등을 배운다. 이외에도 틈틈이 몽타주 프로그램 작동법, 태블릿 사용법 등을 학습한다. 황 경사는 “현재는 포토샵, 몽타주 프로그램 교육 등을 일 년에 한두 번씩 듣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 인물화를 공부하기도 하는 수사관들이 많다”고 말했다.

피해자나 목격자가 각 단계에서 범인의 인상과 가장 흡사한 표본들을 선택하면 알고리즘은 선택된 얼굴들 간 유사성을 분석해 다음 단계에서 더욱 서로 닮은 얼굴군을 제시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제시되는 얼굴군이 점차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해진다./경찰청


◇스케치에서 ‘나이 변환’ 기술까지…몽타주의 역사=점차 줄어드는 몽타주 수요에도 불구하고 보다 정확한 ‘얼굴’을 재현하려는 노력은 오랫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 몽타주 기법의 역사는 약 25년 전 변곡점을 맞았다. 이전에는 오로지 수사관의 기억과 스케치에 의존해왔지만 지난 1995년 미국에서 몽타주 프로그램을 처음 도입하며 컴퓨터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당 시스템이 서양인 얼굴에 맞춰져 있다 보니 한국 사람의 생김새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1999년부터는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몽타주 시스템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인 2015년에는 역시 국내 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개발·보급한 최신 몽타주 시스템 ‘폴리스케치’를 사용 중이다. 여기에는 전에 없던 다양한 기능들이 추가됐다. 3D 변환 기능을 이용하면 제작된 몽타주의 정면부뿐만 아니라 측·후면부까지 확인할 수 있다. ‘나이 든 버전’까지 구현할 수 있어 시간이 오래 지났더라도 용의자 모습을 현재에 최대한 가깝게 추정할 수도 있다. 이외에도 ‘공격적으로 보이게’ ‘매력적으로 보이게’ 등 완성된 몽타주를 다양한 버전으로도 바꿀 수 있다.



◇“‘정서적 유대감’이 그림만큼이나 중요하죠”=몽타주 하면 범인의 정보를 스케치로 구현해내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수사관들은 몽타주를 그리는 주체가 수사관이 아니라 피해자나 목격자라고 말한다. 수사관은 그들의 기억과 가장 비슷한 얼굴을 고를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조력자에 가깝다는 것이다. 피해자·목격자들은 수사관의 안내에 따라 가장 먼저 범인과 유사한 얼굴들을 선택하면 된다. 그러면 알고리즘이 선택된 얼굴들 간 유사성을 포착해 다음 단계에서 다른 얼굴군을 제시하는데 이때 제시된 얼굴들은 앞서 피해자가 선택한 얼굴군보다 상호 유사성이 훨씬 높아져 있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점차 몽타주는 하나의 얼굴로 수렴돼 간다.

몽타주를 그리는 과정이 피해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뤄지다 보니 능수능란한 프로그램 작동 기술 못지않게 상대와 친밀함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몽타주의 한 획 한 획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피해자의 기억과 진술인데 피해자가 범인이나 당시 상황을 떠올리는 것 자체를 고통스러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피해자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정서적 유대감을 쌓아 기억을 온전히 이끌어내야 한다. 수사관들이 몽타주 프로그램 작동법 외에도 면담 역량이나 심리학을 배우는 이유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 소속 황성용 경사가 지난 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몽타주 제작을 시연하고 있다./성형주기자


◇30년 만에 가족 품 찾은 아들…장기 사건서 활약하는 몽타주=강력사건을 비롯한 각종 형사사건을 푸는 열쇠로 기능하던 몽타주 기법은 점차 장기 실종자를 찾고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그 중요성이 옮겨가는 중이다. CCTV가 설치된 공간이 늘고 자동차마다 블랙박스 설치가 보편화돼 형사사건 해결에 강력한 역할을 하는 영상 증거가 많아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다.

몽타주 기법은 장기 실종자를 찾거나 장기미제사건을 해결할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실제 지난 2016년 경찰은 최신 몽타주 프로그램에 탑재된 ‘나이 변환’ 기능을 통해 38년 동안 실종 상태였던 장기 실종자를 찾아 가족의 품으로 되돌려보내는 데 성공했다. 수원 팔달구에 거주하는 A씨는 1978년 잃어버린 아들(당시 중학교 1학년)을 죽기 전에 보고 싶다고 해 가족들이 30여년 만에 다시 경찰을 찾았다. 사건을 맡은 수원 중부경찰서는 뾰족한 수가 없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실종 당시 아들의 증명사진을 기반으로 몽타주 제작을 의뢰했다. 의뢰를 받은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는 ‘나이 변환’ 기능을 이용해 50세 사진을 만들어 배포한 끝에 한 달 만에 제보를 받아 아들을 찾을 수 있었다.

통상 일반인들의 관심은 완성된 몽타주가 실제 범인의 모습을 얼마나 재현하는지에 쏠리지만 일선 수사관들은 몽타주 제작만으로도 여러 긍정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몽타주가 내걸리면 범인은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다. 경찰청 법과학분석계 소속 조동호 경위는 “제3자가 보면 비슷해 보이지 않는 몽타주라도 범죄자가 봤을 때는 다르다”며 “조금 닮은 점도 자신처럼 느껴져 심리적 압박감이 크게 작용해 범행 자백이나 재범 억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몽타주는 초동수사 단계에서 목격자의 기억을 잘 보존하게 해 향후 수사에 큰 도움을 주며 해당 사건이 일어난 인근의 주민·상인 등에게 경계심을 줘 예방 자료로서 기능하기도 한다.
/허진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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