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기업들은 자금난을 호소하고 있지만 시중에 떠도는 돈은 계속 증가해 4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주식시장 불안으로 투자처를 잃은 금융기관의 대기성 자금 예치가 급증하고 가계대출이 증가하고 있어서다. 소비·투자 등에 사용되지 못하고 현금이 남아도는 ‘유동성 함정’ 우려가 나온다.
10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월 통화·유동성’ 자료를 보면 시중통화량을 의미하는 광의통화(M2)는 가계·비영리단체 부문에서 전월대비 10조원 증가하고 기타금융기관에서는 9조5,000억원 증가했다. 정부와 은행의 자금 공급 정책으로 기업 부문의 통화량도 4조3,000억원 늘었다. M2에 2년이상 장기금융상품과 생명보험계약준비금 등이 포함된 금융기관 유동성(Lf)도 전월대비 37조원 증가한 4,182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2월 시중유동성의 전년동월대비 증가율은 8.2%로 1월(7.8%)보다 0.4%포인트 상승했다. 2016년 2월 (8.3%)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투자처 없이 떠도는 자금 때문에 시중 유동성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자금의 대부분은 머니마켓펀드(MMF)와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등 단기금융상품에 몰려있다. MMF는 전월대비 12조7,000억원 증가했으며 저축성예금은 10조8,000억원 증가했다. 정부의 강도높은 규제 정책으로 부동산 거래가 줄어들고 코로나19로 주식시장까지 얼어붙으면서 대기성 자금의 예치가 급증한 영향이다.
이에 따라 유동성 함정 우려는 더 강해지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충격에 대응해 자금을 풀고 한은이 시중 유동성 공급에 나서고 있지만 경기 부양 효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저금리 및 유동성 확대 정책을 펼쳐도 경제주체들이 돈을 움켜쥐고 시장에 내놓지 않는 것이다.
한은이 공급한 본원통화가 시중에서 몇 배의 통화량을 창출했는지 나타내는 통화승수는 올해 1월 15.59배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5년 전인 2015년과 비교하면 2.49포인트나 하락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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