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소?”
지난 2009년 2월 ‘단천마을’이라는 지리산 산꼭대기 작은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는 며칠째 요리에 쓸 감을 찾아 헤매던 그를 보자 대뜸 끼니 걱정을 먼저 했다. 아직 매서운 추이가 가시지 않은 지리산 겨울 끝자락에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온 냉이를 캐던 할머니는 하루 종일 굶은 채 산을 헤매고 다니던 그를 위해 불을 때 밥을 짓기 시작했다. “집에 온 손님인데 밥은 먹여야지, 그렇지 않소”라며 방금 캐온 냉이를 듬뿍 넣은 냉이 된장국을 끓였다. 집에서 담근 된장만 풀어 끓인 평범한 냉잇국이었지만 냉이와 된장의 향을 가득 머금은 국물이 그의 입안에 퍼지자 심장에 큰 울림이 전해졌다. 난생처음 찾아간 마을에서 받아든 냉잇국이 수십년간 전국을 떠돌면서 생겨난 그의 상처를 치유한 치료제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평범한 한 끼의 식사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어머니의 정을 느낀 그는 그날부터 할머니와 모자의 연을 맺고 정을 나누기 시작했다.
자연이 뿌려놓은 재료를 찾기 위해 발길 닿는 대로 평생을 떠돌아다니며 우리에게 음식의 맛과 인생의 ‘참맛’을 알려준 ‘방랑식객’ 임지호 셰프는 그의 수식어인 ‘방랑’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잡초와 나뭇가지는 물론 잔디와 이끼까지 재료 삼아 요리를 만들어내며 우리에게 충격과 신선함을 줬던 그의 요리 철학의 뿌리가 ‘모성’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 위해 바다, 산, 들판, 개펄, 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이 한곳에 어우러진 강화도 해안가 인근에 있는 그의 식당 ‘호정’을 찾았다. 포장되지 않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앞을 바라보니 예전 여객선을 타고 찾아갔던 석모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석모대교 개통 이후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는 재미가 있던 여객선 운항이 부쩍 줄어들면서 석모도를 품은 호정의 앞마당은 더욱 여유로워 보였다. 호정의 앞마당 끝에 편안한 복장을 한 임 셰프가 석모도를 바라보며 홀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친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지만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요리사이자 자연요리 연구가다. 또 그는 세계 각국에 초대돼 한국 음식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 바 있고 2017년에는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주요 기업인 간 호프 미팅에서 만찬을 담당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예능 방송에서 주변에 있는 풀과 나무 등 자연재료를 이용해 즉흥적으로 요리를 만들며 더욱 유명세를 탔다. 10대 초반부터 집을 나와 전국을 떠돌며 연탄 배달 등 허드렛일을 하다 시골 중국집부터 유명 호텔 주방장을 거쳐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가 된 스토리 또한 그의 유명세에 힘을 보탠 양념이 됐다.
이러한 유명세를 뒤로한 채 소탈한 웃음을 띠며 다가온 그와 인사를 나눈 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찾아간 날이 정기 휴일이라 손님은 없었다. 식당 입구에 들어서자 카운터 정면에 걸린 붉은색 밥그릇에 밥이 가득 담긴 그림이 이곳이 식당임을 다시 한 번 알려줬다. 그는 “내가 그린 그림인데, 붉은색이 열정의 완성을 나타내는 색이라 밥 한 끼라도 게으름 없이 열정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를 하기로 한 2층 카페로 올라가며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자연의 에너지와 파장 등 그냥 떠오르는 대로 그렸다”며 “요리도 그렇고 그림도 배우지 않아서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어서 좋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을 듣고 식당 곳곳에 걸린 그의 작품들을 보니 그림에 문외한인 기자가 봐도 작품에 생기가 넘쳐 흘렀다. 보통 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멋쩍은 듯이 “뉴욕에서도 초청 받는 등 해외 개인전도 여러 번 했다”고 귀띔했다.
석모도가 보이는 2층 창가 앞 테이블에 앉아 제일 먼저 그가 출연한 영화 ‘밥정’에 관한 질문을 했다. 한동안 방송 등을 통해 친근하게 다가섰던 임 셰프는 오랜 공백기를 깨고 그의 10년 여정을 고스란히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들고 나왔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줄 알았던 그는 여전히 방랑 중이었고 영화가 그 발길을 조용히 담아냈다.
당초 이 영화는 3월에 개봉할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재난으로 오는 5월로 연기된 상태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지리산에서 만난 김순규 할머니가 끓여줬다는 냉잇국이 실제로 어떤 맛이었는지를 묻자 그는 “집에서 담근 된장과 냉이 외에 특별하게 더 넣은 게 없었는데도 간이 딱 맞았다”며 “무언가를 더해 의도된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을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맛”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어 “냉잇국을 끓여줬던 할머니를 통해 풀잎 하나, 벌레 하나에도 모성이 깃들어 있는데 내가 좁은 시야로 나만의 어머니를 찾고 있었다는 점을 60년 만에 깨닫게 됐다”며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만든 음식에는 삶을 끌어주고 버티게 해주는 어머니의 정이 담겨 있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는 낳아주셨지만 사고로 돌아가셔서 얼굴조차 모르는 친어머니, 가슴으로 길러주신 양어머니가 있었지만 항상 모정에 대한 갈증이 강했다. 이러한 갈증을 풀기 위해 그동안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전국을 방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지리산의 이름 모를 산골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해답을 찾았다.
그는 “음식에는 어머니의 그리움이 담겼다. 사람들은 힘들 때 예전 어머니가 해줬던 음식이 생각나고 또 그 비슷한 맛을 찾기 위해 식당들을 찾아다닌다”며 “어머니가 해줬던 맛을 만났을 때는 그동안의 간절함이 큰 기쁨으로 변하는 것처럼 인생도 어머니의 그리움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임 셰프는 손님 중 한 명이 아이까지 다 키우고 나서는 어머니가 해줬던 장아찌가 그리워 찾아 나섰다가 호정에서 그 맛을 찾고 감동 받은 모습에 “내가 본질을 망각하지 않고 잘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는 또 “내가 이번 인생에 음식을 택한 건 최고의 선택으로 다른 것을 했다면 이만큼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가장 힘들었을 때 음식이 나를 살려줬던 것처럼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밥 한 끼에는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도전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중 기침이 나오자 놀란 마음에 농담을 섞어 “코로나19랑 관련 없는 기침이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 온도 변화가 있으면 기침이 나온다”고 말하며 수습하려 하자 그는 “자연의 생리와 조화되는 섭생이 변했기 때문”이라며 “오롯이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성장해 사회에 나간 뒤 외식이 늘면서 사람들의 몸이 변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자식이 맛있게 먹는 것을 상상하며 만든 어머니의 음식과 달리 일반 음식점에서 파는 음식에는 이러한 모정이 간직한 심장의 울림이 담기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다. 임 셰프의 말을 듣자 이번주 말에는 ‘엄마 밥’을 먹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인터뷰가 끝난 후 기자를 배웅 나온 그가 마침 정기휴일인 줄 모르고 찾아온 중년의 손님에게 털털한 웃음과 함께 “아이고 오늘 쉬는 날인데 어쩌나, 다음에 밥 드시러 오세요”라고 하자 손님은 “일부러 멀리서 왔는데”라며 잔뜩 아쉬운 표정으로 발길을 돌렸다. 터덜터덜 돌아가는 손님을 보자 문득 임 셰프가 수십년간 찾아다닌 모정에 대한 그리움을 우리도 무의식 중에 찾아다니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움으로 짓고 진심으로 눌러 담은 어머니의 향기가 느껴지는 따뜻한 밥 한 끼를 먹기 위해서 말이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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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경북 안동 △1981~1984년 사우디아라비아 코오롱 건설 현장 주방장 △1985년 서린호텔 한식당 주방장 △유엔 한국 음식축제 참가 △2004년 캘리포니아 사찰 음식 퍼포먼스 참가 △2005년 베네수엘라 수교 40주년 한국 음식전 참가 △2006년 미국 뉴욕 스파크링코리아 선포식, 한류우드상 수상 △2006년 미국 푸드아트 표지모델 선정 △2009~2011년 SBS 스페셜 ‘방랑식객’ 출연 △2017년 청와대 경제인만찬 메인 셰프 △2019년 한중일 문화관광부 장관 초대만찬 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