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만난 박원주 특허청장은 달변가다. 특히 특허를 포함한 지식재산(IP)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약장수’가 된다. 그만큼 국내 지식재산 시장이 가야 할 길이 시급하고 절박하기 때문이다.
겉보기에는 샌님이지만 역대 어느 특허청장도 하지 못한 “특허청은 특허심사 기능에 머물지 말라”거나 “(특허 업무가) 국내 기업과 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소통을 해야 한다” 등과 같은 파격적인 말들을 공개 석상에서 스스럼없이 한다. 변화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박 청장은 취임과 함께 기존 특허청 배지에 ‘WE INOVATE INOVATION’이라는 영문 글귀를 하나 더 새겨넣었다. ‘우리는 혁신을 혁신한다’는 내용인데 기존의 특허청에 머물지 말라는 ‘독려’의 의미가 담겼다.
요즘 박 청장은 직원들에게 “의용군이 돼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특허청 직원들이 과거에는 경작만 잘하면 되는 농민에 머물렀다면 글로벌 ‘기술패권’ 전쟁이 시작된 지금은 기업들을 도와 함께 싸워주는 의용군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특허청이 기업과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제때 바꿔내지 못했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박 청장은 “미중 무역전쟁과 일본 수출규제의 공통점은 기술패권 전쟁의 일부라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특허청이 앞장서 싸워 우리 기업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박 청장은 지난해 조직개편을 통해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기술을 우선 심사하는 융복합기술심사국을 설치했다. 심사국을 뒷받침하기 위해 3인 심사제도 도입했다. 1인 심사 체제에 익숙해 있던 조직은 잠시 술렁거렸지만 박 청장은 “특허청의 달라진 역할을 고려하면 당연한 변화”라며 설득했다는 후문이다. 박 청장은 “(신설된) 심사국은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 할 특허를 내주면서 신기술을 선점하는 첨병이 되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박 청장은 특허청이라는 부처명이 과거 일제 잔재에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식재산 범위를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뒤처져 있다고 주장했다. 특허청을 ‘지식재산혁신청’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여러 번 했다. 그때마다 일부 부처의 반발에 부딪혀 답보 상태다. 박 청장은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전 세계에 특허가 들어간 부처 명칭을 쓰는 나라가 일본 등 손에 꼽을 정도이고 우리가 후진국으로 알고 있는 나라들도 지식재산(IP)라는 단어를 부처 명칭에 넣고 있는데 지식재산 출원 건수가 글로벌 4위에 올라 있는 한국이 변화에 둔감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박 청장은 지식재산혁신청으로 명칭을 바꾸게 되면 저작권 업무까지 특허청에 빼앗길 것을 우려하는 일부 부처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진전이 없다고 했다. 박 청장은 “특허청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알리기 위한 명칭 개정이 이뤄져야지, 업무를 빼앗길까 두려워 반대하는 것은 국민에게 부끄럽다”며 “저작권 이관이 문제가 된다면 특허청이 반대하는 부처의 산하기관이 돼도 좋으니 명칭 개정에는 동의해달라”고 호소했다.
박 청장은 미국 특허청장을 시작으로 주요국 특허청장과 코로나19 방역에 대해 논의하고 한국의 모범사례를 적극 설파하고 있다. 워크 스루와 같은 방역장비에 대한 해외수출에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마지막으로 박 청장에게 공직자의 자세는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공직자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근사한 대답이 돌아왔다.
“공직은 수많은 사람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최고의 방법을 찾아내는 자리입니다. 자신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와서 일이 더 잘 될 수 있는데도 자신의 자리라는 이유로 지키려고만 하는 공직자는 국가와 국민 앞에 죄인이나 다름없어요.” /양종곤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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