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경기불황 속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까지 더해지면서 온라인 중고거래가 저성장 시대의 새로운 소비문화로 떠오르고 있다. 얄팍해진 주머니 사정 탓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실용적 소비습관과 생활 속 재미를 추구하는 심리가 맞물리며 중고거래 장터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500만명. 온라인쇼핑의 ‘틈새시장’으로 여겨졌던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한 사람들의 숫자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매체인 ‘모바일인덱스’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올해 3월 전체 중고거래 앱 사용자는 약 492만명으로 280만여명이 중고거래 앱을 사용했던 지난해 1월보다 76% 늘었다. 이러한 성장세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중고물품 직거래 앱인 ‘당근마켓’의 약진이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3월 한 달 동안 당근마켓 앱을 이용한 사용자 수는 약 446만명이다. 다음으로 사용자가 많았던 중고거래 앱 ‘번개장터’(약 134만명)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지난달 10일에는 약 156만명의 하루 이용자 수를 기록하며 일 사용자 기준으로 800여개의 쇼핑 앱 중 2위에 올랐다. ‘온라인 유통공룡’이라 불리는 11번가(137만명)와 위메프(109만명)도 제친 것이다.
업계에서는 당근마켓이 여타 중고거래 앱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직거래’에 있다고 본다. 당근마켓은 휴대폰의 위치추적 기능을 활용해 사용자가 위치한 지역 인근에 올라온 물건만 앱 화면에 노출한다. 물건을 직접 들고 나가야 하는 만큼 의류, 생활용품 같은 소소한 상품들이 주로 거래되고 시세 또한 저렴하다. 최근 당근마켓을 자주 이용하는 직장인 조윤지(29)씨는 “잘 안 입는 옷과 신발을 내놔도 일주일 안이면 팔리는 게 신기하다”며 “얼마 전엔 코로나19 때문에 해외 직구로나 구할 수 있던 체온계를 당근마켓에서 7,000원에 샀다”고 말했다.
당근마켓을 비롯한 중고거래 플랫폼들이 각광받는 까닭은 뭘까.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소비문화가 변했기 때문이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요즘의 소비 트렌드는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것”이라며 “여기에 더해 지속가능 소비, 친환경 소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며 중고품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젊은 세대에게는 중고 물건을 사고파는 것 자체가 하나의 놀이이자 재미”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직거래를 하려고 나갔더니 엄마가 시켜서 아들이 대신 나왔더라’, ‘판매자가 초코우유를 줘서 마음이 훈훈해졌다’ 등 다양한 후기들이 공유되고 있다.
중고거래의 인기는 ‘불황형 소비의 단면’이라는 진단도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일본도 장기불황을 거치면서 중고거래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다”며 “평소 안 쓰는 물건을 버리기는 아까운데 직거래로 간단히 처분할 수 있는 장이 생기니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중고거래 앱 ‘메루카리’는 2018년 기업공개(IPO) 첫날 시가총액이 장중 한때 74억달러(약 8조1,792억원)까지 치솟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 교수는 “저성장 시대가 고착화하면 적게 사고 적게 쓰는 ‘미니멀리즘’이 소비문화의 새로운 주류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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