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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조 채안펀드 집행, 40일간 고작 6,200억

'AA'등급 미만땐 매입 제한

자금줄 마른 기업들 발동동

은성수(왼쪽 두번째) 금융위원장이 지난 6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최대 20조원 규모로 조성된 채권시장안정펀드가 지난 4월 매입을 시작한 뒤 사들인 회사채가 6,000억원대에 불과했다. 동시에 정부가 저(低) 신용등급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채권담보부증권(P-CBO) 프로그램의 실제 승인율(자동차부품 업체 기준)도 25%에 그쳤고 첫 유동성 지원도 이달 말이나 돼야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다. 자금난을 겪는 기업들의 상황은 다급한데 실제 집행이 더뎌 현장에서 정부 금융대책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

1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채안펀드 가동 이후 지원받은 기업은 기아자동차 등 총 11곳이며 회사채 매입 총액은 6,2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은행권 기업대출이 27조9,000억원 늘어날 정도로 자금압박이 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채안펀드의 지원실적은 다소 초라하다.

물론 펀드에 대한 중간평가는 엇갈린다. 금융당국은 시장 안정의 소방수 역할을 했다는 입장인 반면 업계에서는 더 적극적인 매입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2차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가능성까지 나오는 만큼 더욱 공격적인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IB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대기업들마저 ‘빌릴 수 있을 때 미리 빌려놓자’는 전략으로 은행 대출한도를 크게 늘려 잡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며 “정부가 금융지원에 속도감을 낼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 IB업계가 꼽은 채안펀드 부진 세가지 이유

① 적극매입 vs 마중물만…시장 - 당국 온도차에 자금 미스매칭

② ‘AA-’ 사실상 제외되며 궁지 몰린 기업 신용절벽 심화

③ 회사채 발행금리 높아지자 투자 늘며 조달시장 안정 찾아

이달 2,800억원어치 회사채를 상환해야 하는 롯데렌탈은 최근 차환 발행 시점을 저울질하다 보유현금을 이용해 상환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회사의 신용등급이 ‘AA-’인데다 ‘부정적’ 전망까지 붙어 있어 추후 신용도 조정을 우려한 시장의 투심이 아직 싸늘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달 시장에서 유효수요를 한 건도 확보하지 못한 한화솔루션의 사례도 부담이다. 채권시장 안정화를 위해 구원투수로 등판한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마저 이들을 외면하면서 시장에서의 자금조달이 여전히 막막하다.



채안펀드가 자금 집행을 시작한 지 한 달 여가 지났지만 회사채에 대한 투심은 아직 돌아왔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12일 기준 회사채 3년물(AA-, 무보증)과 동일만기 국고채 스프레드는 75bp(1bp=0.01%포인트)로 자금시장이 얼어붙은 3월 말 59.5bp보다 크게 벌어졌다. 채안펀드도 시장 분위기에 따라 채권평가사들이 평가한 평균 금리(민평금리)를 크게 웃도는 수준에서 매입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16일 채안펀드는 호텔신라의 회사채 발행 사전청약에 참여해 민평금리에 35bp를 가산한 수준으로 주문을 넣었다. 민평금리보다 낮거나 비슷한 선에서 매입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투자은행(IB) 업계는 부진원인으로 3가지를 꼽았다.



① 금융당국과 시장, 여전한 체감 온도 차= 채안펀드는 11개 기업에 6,200억원어치를 투자하면서 발행규모의 약 14%를 지원했다. 매입 대상을 AA-~AA+급, 차환 목적으로 신규발행되는 3년물 회사채에 한정되면서 투자풀이 작아졌다. 등급이 하락해 채권값이 떨어질 우려가 있는 신용등급 ‘부정적’ 전망 기업들도 아예 담지 않았다. 당초에 ‘시장안정화’에 대한 해석이 금융당국과 시장 간에 달랐던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당초 채안펀드의 취지를 기업 자금 조달의 마중물 수준으로 제한했다. 발행시장이 비이상적으로 경색되는 것을 막을 뿐 가격이나 금리에 대해서는 관여치 않겠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시장은 그러나 채안펀드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풀어 치솟은 금리를 낮춰주기를 희망했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어려울 때일수록 낮은 금리로 대규모 물량들을 매입하면서 시장을 선도해주면 좋은데 오히려 보수적인 투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며 “자금 출자자가 대부분 시중은행 등 금융기관인 것도 한 이유”라고 내다봤다. 결과적으로 기업들이 채안펀드를 믿고 적극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면서 발행 기업이 제한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② AA- 사실상 제외…크레딧 절벽 발생= 신용등급에 ‘부정적’ 전망이 달린 기업들을 외면하면서 신용 절벽이 심화하고 있다는 우려도 크다. 지난달 부정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수요예측을 강행한 한화솔루션은 ‘AA-’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어 채안펀드의 매입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추후 등급 하락 이슈가 있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채안펀드도 매입하지 않는 기업에 투자했다는 리스크를 감내하기 싫은 기관투자자들도 등을 돌렸다. 결국 시장에서 유효 수요를 단 한 건도 확보하지 못하면서 한화솔루션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저신용 기업들은 발행 계획을 철회하거나 미루고 있다. 이달 1,500억원어치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LG하우시스도 금융기관 대출로 사채를 상환하기로 했다.

③ 조달시장 안정화, 펀드 수요 감소 요인도= 조달시장이 점점 안정화하는 것도 채안펀드의 수요를 줄이는 이유다. 발행금리가 크게 높아지자 회사채에 투자하려는 일반 고객들이 생겨나면서 증권사의 리테일 창구에서도 회사채 사전청약에 참여하고 있다. 3월 분기말이 지나고 출렁이던 단기자금시장이 안정세로 접어들자 ‘패닉셀’을 던지던 기관투자자들도 하나둘 매입을 시작했다. 산업은행도 100억~400억원 규모로 회사채 인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말 수요예측을 진행한 현대차와 LS일렉트릭은 차환 발행이 아닌 만큼 채안펀드의 지원을 받지 못했지만 시장에서 무난하게 매수 주문을 채웠다.

채안펀드 효과가 예상만큼 시장에 크게 작용하지 못하면서 최근 정부가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내놓은 35조원 규모 저등급회사채·CP매입 정책에도 기대감은 시들한 상태다. 정책이 발표된 지난달 22일에도 회사채 금리 스프레드는 유의미한 변동이 없었다. /김민경·서일범기자 mk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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