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모두 힘든 때 아니니. 나만 덮으면 된다. 2억원 외상값 모두 잊자.”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미담 발굴 공모전을 시행한 중소기업중앙회 앞으로 응모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전남에서 원예일을 하던 김대용(59)씨의 딸이 쓴 ‘2억 외상값은 잊어라’는 제목의 편지다.
김씨 가족은 자재와 씨앗, 비료를 파는 일을 해왔다. 이런 물건을 농촌어르신에게 팔다 보니 김씨는 수시로 외상거래를 ‘어쩔 수 없지’ 하면서 참았다. ‘비닐하우스 엮는 철근 300개랑, 비닐 50포 주세요. 150만원 달아놔.’
수확철인 가을이면, 김씨에게 돈을 갚는 분도 있지만, 흉년이 되면 ‘정말 미안한데, 내년에 갚을게’라고 넘어가는 어르신도 있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늘어난 외상빚은 약 2억원. 김씨의 딸은 “어떤 분은 2,000만원어치 비닐하우스를 제작하고 도망을 갔다”며 “빚이 늘고 부모님의 마음도 몸도 병들었다”고 말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쓰러진 김씨의 아버지는 매일 약을 복용하게 됐고, 그의 어머니는 무거운 자재를 옮기던 중 몸이 버티지 못해 허리 수술까지 받았다.
결국 지난해 김씨는 원예일을 접었다. 이 때부터 김씨와 그의 딸, 그의 동생은 외상값을 받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올해 코로나19가 덮쳤다. 어느 날 작물을 보고 온 어머니는 딸을 불러 “학교가 개학을 안해 급식소로 출하될 작물이 하우스에 그대로였다”며 “다 키운 작물을 보고 운 농부들을 보고 나도 울었다”고 말했다. 이 말을 잠자코 듣던 아버지는 “2억 외상값을 내려놓기로 했다”고 김씨의 딸에게 뜻밖의 말을 했다. 김씨의 딸은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빚 때문에 내가 창문깨진 고시원을 전전하고 싸구려 티셔츠에 매일 똑같은 청바지만 입었지 않느냐”고 소리쳤다. 속상한 마음이 너무 컸다. 딸 머리 속에는 붕어빵 살 돈이 없어 누군가 떨어뜨린 동전을 찾아 동네를 돌았던 어린시절 기억이 스쳤다.
아버지는 딸을 타일렀다. “은행처럼 집에 가압류를 하면 돈을 뺏어올 수 있다. 소송도 하면 돈 가져올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로 모두 힘든 때 아니냐. 나만 (빚을) 덮으면 된다.”
이 아버지는 중기중앙회로부터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 이웃을 도운 ‘영웅’으로 뽑혀 감사패를 받았다. 중기중앙회는 이 아버지를 ‘영웅’이라고 했지만, 딸은 편지에서 ‘부모님은 바보다. 남들에게 돈 다 퍼주고, 몸도 마음도 힘든데도 남을 더 걱정하는 바보다’라고 속상해했다.
/양종곤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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