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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생산기지 이전, 원룸이사 아냐" 美 압박에 고민 빠진 재계

클라크 국무차관 "탈중국 공급망 구축 함께하자"

삼성·LG·현대차 등 28년간 막대한 투자 이어와

"'14억 인구대국' 中 버릴 수 있겠나…불가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찬 회동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AP연합뉴스




미국이 한국 정부에 ‘탈중국 공급망’을 함께 구축하자고 요청하자 재계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지난 1992년 맺은 한중수교 이후 대중 투자를 이어왔던 기업들은 두 국가의 다툼이 남길 후폭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1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4월까지 우리 기업이 중국에 수출한 규모는 393억6,084만달러로 같은 기간 미국에 수출한 243억73만달러를 웃돌았다. 무역수지를 따져도 한국은 중국을 상대로 168억달러를 남긴데 반해, 미국서는 29억달러 남기는 데 그쳤다. 이 같은 추세는 지난 2003년 대중 수출액이 대미 수출액을 제친 이래 계속돼왔다. 또한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 본토와 홍콩을 합친 지역의 수출비중은 34.4%에 달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비중은 12.0%에 불과했다. 개별 기업이 들인 공을 따져봐도 중국 쏠림은 뚜렷하다. ‘최소비용, 최대효과’를 우선하는 기업들은 근거리의 인구대국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28년간 막대한 직·간접 투자를 이어왔다. LG전자(066570)는 한중수교 이듬해 중국 후이저우에 생산법인을 세운 이래 지금까지 10곳의 생산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미국에는 공장이 3곳뿐이다. 삼성전자(005930)는 수교를 맺은 해 진출해 지금까지 텐진과 시안 등에 반도체·가전 공장 4곳을 중국에 세웠다. 미국은 2곳이다.

중국 시장을 탐냈던 현대기아차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 2002년 현지 합작 파트너사와 업무협약(MOU)를 체결하고 베이징현대, 둥펑위에다기아 법인을 설립했다. 베이징현대는 1~3공장과 창저우 4공장, 충칭 5공장을 합쳐 총 165만대 생산 규모를 갖추고 있다. 둥펑위에다기아는 옌청 공장(75만대)이 있다. 반면 앨라배마와 조지아 공장 두 곳을 세운 미국서는 연간 70만대만 생산한다. 이에 대해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중국 자동차 시장은 전 세계에서 가장 커 국내 자동차 업계가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며 “지금까지의 투자를 뒤로하고 물러설 수 있는 규모가 아니”라고 짚었다.



재계는 이날 발언에 대해 탈중국 공급망의 한 축을 한국에 떠넘기려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고 평했다. 이원석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팀장은 “경제 번영 네트워크(EPN) 제안은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미국의 정치적 제스처”라며 “기업생산기지 이전은 원룸이사 하듯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기업들은 14억 명의 시장을 바라보고 중국에 간 만큼 즉각적 ‘탈중국’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기업들은 철저한 손익계산서에 따라 향후 투자계획을 결정지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중국에 진출했지만 미국 시장을 놓칠 수 없는 기업이라면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추가 설비 투자나 인력 고용 등의 카드로 대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대만의 반도체 기업 TSMC가 화웨이로부터의 신규 수주를 전격 중단하고 미국 투자를 약속한 것처럼 극단적인 사례도 나올 수 있다.

한편 이날 키스 크라크 미국 국무차관은 “우리는 미국, 한국 등 국가들의 단합을 위한 EPN 구상을 논의했다”면서 탈중국 공급망 구축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크라크 차관은 EPN이 전 세계에서 생각을 같이하는 국가, 기업, 시민 사회들로 구성되며, “민주적 가치들”에 따라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이수민·서종갑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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