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003490)의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매각 예비 입찰에 아무도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인허가권을 쥔 서울시가 부지를 인수해 공원을 만들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황인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심판을 봐야 할 서울시가 선수로 뛰면서 인허가권을 쥐고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일종의 갑질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10일 진행된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 매각 입찰 의향서(LOI) 제출 마감에는 아무도 서류를 내지 않았다. 매각 주관사인 삼정KPMG와 삼성증권은 이날 오후 5시까지 관련 서류를 받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개경쟁 입찰 방식이라 예비입찰에 LOI를 내지 않더라도 본입찰에 참여할 수는 있지만, 현재 분위기는 누구도 참여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투자설명서(IM)를 받아간 잠재 인수 후보군은 15곳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시내 대규모로 고급 타운형 주택 공급이 힘든 상황에서 송현동 부지의 입지적 강점을 눈여겨본 시행 전문 기업 등이 관심을 보인 바 있다.
투자 업계에서는 이번 공개 매각 작업이 사실상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송현동 부지는 경복궁 인근이라는 특성 때문에 높이 12m 제한, 1종 일반거주지역으로 용적률이 100~200%에 불과하다. 인근에 덕성여고, 덕성여중, 풍문여고 등 학교가 인접해 개발하려면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 앞서 대한항공이 7성급 한옥 호텔을 지으려다 학교 주변에 호텔 설립을 금지하는 학교보건법에 막혀 개발을 포기했고 대한항공 이전 송현동 땅 주인이었던 삼성생명도 미술관을 세우려다 실패한 전력이 있다.
인허가권자인 서울시는 부지를 직접 인수해 공원을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북촌지구단위계획변경안을 공고하고 3만6,642㎡ 규모의 송현동 부지를 문화공원 조성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는 공개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4,670억원에 땅을 사겠다고 대한항공에 제안했다. 공개 경쟁 입찰에 참여하지 않는 만큼 시세대로 매입한다고 보기 힘든 상황이다.
대한항공은 신종코로나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며 생존을 걸고 유동성 마련에 사실상 올인하고 있다. 앞서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으로부터 1조2,000억원을 지원받기 위해 송현동 땅을 포함한 각종 알짜 자산 매각을 약속한 바 있다. 항공업의 필수 자산인 기내식 사업도 현금 마련을 위해 매각 중이다.
서울시가 송현동 부지를 4,670억원에 인수한다면 대한항공이 손에 쥘 돈은 한 푼도 없을 전망이다. 현재 송현동 부지는 담보권만 7,000억원이 설정된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여기에 서울시는 대금을 2022년까지 나눠서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부동산 투자 업계 한 관계자는 “서울시가 진정으로 인수 의지가 있다면 인허가권을 내려두고 플레이어로 경쟁입찰에 참여하는 게 맞다”며 “기업을 상대로 불공정 경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도원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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