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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보다 센 코로나... "더 쓰기 위한 증세는 毒"

코로나시대 세법 개정 어떻게

증세, 소비쇼크, 투자위축 불러

법인세 낮춰 경제부터 살려야

지난 1일 홍남기(왼쪽 두 번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돈을 푸는 재정확대에 올인했다. 긴급재난지원금 14조3,000억원의 달콤한 맛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2차 지급 요구를 불러왔고 기본소득 도입 목소리까지 불거지고 있다.

세수는 쪼그라드는데 현금성 복지만 폭증하다 보니 급기야 증세 얘기까지 나온다. 코로나19 2차 대유행에 대한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데다 실물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증세는 소비쇼크 및 투자위축 등 우리 경제에 독이 될 우려가 크다. 세제 전문가들은 “지금은 증세를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며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감세안으로 경제를 활성화해 자연스레 세수증대를 이끄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15일 국세청에 따르면 코로나19 피해 중견·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3월에 납부해야 할 법인세를 6월까지 유예해준 규모는 총 4만2,000곳, 1조7,000억원에 달한다. 경기회복이 더딘 상태여서 추가 연장신청을 고민할 정도로 부담감을 느끼는 기업들이 많아 연체 폭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세 차례의 추가경정예산안과 기간산업안정기금 등 총 250조원 규모의 직접지원대책을 내놓았지만 재정과 금융지원에 치중했을 뿐 세제지원에는 인색했다.

기업인들은 다음달 발표할 올해 세법개정안에서 법인세율과 상속세율 인하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달라고 적극 건의하고 있다. 과거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지낸 윤영선 전 관세청장은 “지출은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면서 세입에는 브레이크를 걸면 기업에 보내는 시그널이 사라지고 정책효과가 반감된다”고 지적했다. 경기진작 목적으로 확장재정 카드를 썼다면 세금 감면이 병행돼야 낭비적 지출을 막는다는 것이다.


'더 쓰기 위한 증세론'에 경고등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총 국세 감면액 중 법인세 감면액 비중은 지난 2011년 31.1%에서 2019년 14.7%로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법인세수가 50조원에서 72조원으로 늘었지만 감면액은 9조2,000억원에서 7조9,000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여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대기업까지는 힘들고 중견·중소기업의 법인세를 한시적으로 낮추는 것은 해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대응까지 더해지며 재정지출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증세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대기업·고소득자를 타깃으로 하는 ‘핀셋 증세’를 넘어 여권에서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증세론(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까지 거론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조세재정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들은 일찌감치 증세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는 와중에 나타나는 가파른 고령화 추세 등을 고려할 때 중장기적인 세입 확충 논의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된다. 하지만 조세 전문가들은 지금 같은 코로나19발 경제위기 상황에서 ‘당장 돈을 더 쓰기 위한’ 증세는 우리 경제에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민간 소비·투자심리를 위축시켜 오히려 세입을 더 쪼그라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 국내 투자 의지를 약화시키는 현 법인세·상속세 체계를 과감하게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위기 상황에서 증세한다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여파로 국내 소비와 투자는 급랭했다. 현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는 지난 4월 외환위기 이후 최대 폭으로 하락했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일부 지표가 개선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전문가들이 최근 등장하는 증세론을 경계하는 것은 자칫 이런 경기회복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을 지낸 김낙회 법무법인 율촌 고문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세금을 더 걷겠다고 나선다면 (경제 전체의) 판 자체가 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이 가까운 사례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소비세율(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을 8%에서 10%로 올렸다. 이는 당장 소비위축을 일으켰고 그해 4·4분기 일본의 개인소비는 2.9% 줄었다. 여파는 올해까지 이어져 지난 1·4분기 개인소비도 0.7% 감소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미 조세지출을 포함한 각종 비(非)소비지출이 추세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즉각적인 증세는 그렇지 않아도 꽉 닫은 지갑을 더욱 닫게 할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1·4분기 가구당 정기적인 세금지출(경상조세)은 월 22만원으로 1년 전보다 1.3% 늘었다. “소비를 하라고 긴급재난지원금을 줘놓고 증세해 가처분소득을 줄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수도권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70대의 A씨는 요즘 이민을 알아보고 있다. 40년 넘게 회사를 일궈온 그는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주려면 약 3,000억원의 상속세 부담을 져야 한다”는 말에 결국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국내 대형 로펌의 한 세무사는 “상속세 문제 때문에 승계 대신 기업을 팔아버리거나 아예 해외로 이민을 가려는 사례가 부지기수”라고 전했다.


그림의 떡인 가업상속공제제도...상속세부터 손봐야


최고세율 50%(최대주주 할증 시 60%)에 이르는 상속세는 기업 영속성을 떨어뜨려 투자 의지를 꺾는 대표적인 세목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중견기업들까지 나서서 ‘가혹하다’며 상속세 인하를 호소하고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뿌리 깊은 반기업정서와 사회적 불평등 해소라는 대의가 엮이면서 산업계의 주장은 힘을 잃는다. 지민호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명문장수기업센터 팀장은 “세계 각국은 자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완화하고 있다”며 “상속세 최고세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5%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업을 승계하면 세금을 공제해주는 가업상속공제제도가 있지만 까다로운 조건 탓에 활용도는 낮다. 업력 10년 이상, 직전 3년 평균 매출 3,000억원 미만인 기업이 승계할 경우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재산을 공제해준다. 하지만 공제를 받은 후 7년 동안 업종과 자산, 근로자 수를 유지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이 때문에 2014~2018년 가업상속공제 건수는 연평균 81건에 불과하고 건당 공제금액은 한도에 크게 못 미치는 25억원에 그친다.

국제 추세에 역행해 25%(지방세 포함 시 27.5%)까지 올라간 법인세율도 마찬가지다. KDI에 따르면 법인세 평균 실효세율이 1%포인트 낮아질 경우 투자율은 0.2%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에서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상 법인세율 자체의 인하가 어렵다면 최근 통합 방침을 밝힌 10개 투자세액공제 공제율을 10%(중소기업) 수준으로 높게 설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이태석 KDI 공공경제연구부장도 “내년 상반기까지 코로나19 여파가 이어질 수 있어 증세보다는 기업 지원과 고용 증대를 위한 세제 지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종=황정원·한재영·하정연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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