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경기침체 시나리오에 따르면 미국 은행 네 곳 중 적어도 한 곳 이상이 최소 자본 기준에 미달하기 직전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
연준이 25일(현지시간) 연례 스트레스테스트(재무건전성 평가) 결과를 내놓으면서 일부 미국 은행들이 건전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연준은 개별 은행의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예측치가 쏟아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의 보통주자본(CET1) 비율은 최악의 침체 시나리오를 가정했을 때 13.3%에서 6.9%로 급락한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골드만삭스가 최소 요구 수준을 살짝 밑돌았다고 분석했다. JP모건체이스(9.8%), 뱅크오브아메리카(9.6%), 웰스파고(9.1%)도 한자릿수에 그쳤다. NYT는 “연준의 전망 중 일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지난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보다 상황이 훨씬 더 악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연준은 U자형 혹은 W자형 시나리오에서도 다수 은행의 자본상태는 괜찮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은행들에 자본확충을 요구하고 있다. 연준은 오는 3·4분기까지 자사주 매입을 중단하고 배당금 지급을 현 수준 이하로 동결할 것을 지시했다. 또 은행들에 필요 자본 규모와 유지 방안을 제출하라고 했다. 은행들은 배당 계획도 다시 내야 한다. 이는 스트레스테스트가 도입된 후 처음 있는 조치로, 기존에는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한 은행만 배당 계획을 제출해왔다. 워싱턴포스트(WP)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연준이 사실상 처음으로 새 규제를 내놓았다”며 “은행 업계는 충분히 경기침체를 헤쳐나갈 수 있다고 하지만 이번 침체가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따라 은행 업계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월가에서는 대형 은행들의 자본확충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배당 규제 자체는 이미 예상된 만큼 시장에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면서 “다만 골드만삭스의 자본비율이 급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는 점에서 은행들이 확충해야 할 자본이 예상보다 클 수 있다”고 전했다. 랜들 퀄스 연준 금융규제담당 부의장은 “필요한 여건이 되면 연준은 바이백(자사주 매입)과 배당 제한에 추가 조처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연준의 이 같은 발표를 전후해 뉴욕증시의 은행주는 요동쳤다. 이날 장중에는 미 금융당국이 볼커룰을 완화한다고 발표하면서 은행주들은 일제히 올랐다가 연준의 스트레스테스트 결과가 나오자 시간외거래에서 하락했다. 골드만삭스 주가는 전날 대비 4.59% 상승했지만 마감 이후 3.43% 빠졌다. 웰스파고의 경우 4.79% 오르며 마감했지만 폐장 이후 3% 가까이 밀렸다.
웰스파고는 올 1·4분기 순익이 전년 동기 대비 89% 급감하는 등 실적도 부진한 만큼 연준의 조치에 따라 배당 삭감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CNBC는 “일부 트레이더들은 가장 수익성이 좋은 JP모건조차 배당을 줄여야 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4월 심각한 침체가 나타날 경우 배당 지급을 연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준 일각에서는 더 강한 수준의 규제를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연준의 발표에 대해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 임명된 레이얼 브레이너드 이사는 별도의 성명을 통해 모든 은행의 전면적인 배당 중단을 주장했다. 그는 연준이 심각한 침체 가능성이 있는데도 은행의 배당 지급 자체를 막지 않은 것은 실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준의) 이번 정책은 금융위기 사태에서 핵심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라며 “지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유럽중앙은행(ECB)은 3월 역내 은행에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매입을 자제하도록 했다. 바클레이스·HSBC·스탠다드차타드 등 영국 대형 은행도 금융당국의 압박에 따라 배당과 CEO 등에 대한 현금 보너스 지급을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김기혁기자 뉴욕=김영필특파원 coldmetal@sedaily.com
◇스트레스 테스트란
환율·외환유동성 등 경제환경의 주요 변수가 최악을 기록하는 급격한 변동상황에서 금융기관의 부실위험이 어느 정도로 증가하는지를 측정하는 재무건전성 평가다. 시나리오별로 금융회사나 금융 시스템에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규모를 추정하고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점검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위기상황을 가정해 은행의 자본적정성 지표 등을 점검하기 위해 스트레스테스트를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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